[토요판]
“결국엔 헤어졌어요.” “다시는 그런 사람 못 만날 것 같아요.” “평생 꿈꾸던 사람이었는데.” 꼭 연애 칼럼을 쓰는 사람이 아니어도, 애정학의 전문가가 아니어도, 살면서 이런 사람을 위로해 주어야 할 때가 있으리라 본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누군가의 위로를 필요로 할 때도 있다. 물론 그런 위로가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모른다. 아니, 사실 이런 상황에서의 조언과 위로는 대개 쓸모없기 마련이어서 오히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만 들게 만든다. 그러니 누군가 꿈꾸던 무엇인가를 잃었을 때 우리는 그에게, 그녀에게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 것이 좋을까? 태풍 나크리가 휩쓸고 있을 때 나는, 숙소인 제주 서쪽 협재리에서 잠시 떠나 동쪽 성산읍에 머물고 있었다. 도시 생활이야 비, 바람에도 할 일은 해야 하지만 이런 날씨에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뱃일하는 사람도 쉬고, 밭일하는 사람도 쉬고, 장사하는 사람도 그저 쉴 수밖에 없다. 할 일이 없기는 여행자도 마찬가지여서 작정하고 비바람을 맞으며 오름에 올라가는 객기를 부리거나 예닐곱시면 문을 닫아버리는 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 고작인데 그렇게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동쪽 중산간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에서 시간이나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갔었다. ‘꿈은 영원히 꿈에 머문다.’ 꿈같은 현실의 작품들 사이 어디쯤에 작가의 생각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김영갑 작가의 치열했던 삶과 작품 세계야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그의 사진들도 꽤 익숙한 이미지가 되어 버렸지만 생전에 그가 일했던 작업실의 외벽 한귀퉁이에 쓰여 있던 이 글귀가 나를 때렸다. 태풍처럼. 뭔가 애잔하고, 슬프고, 쓸쓸하고, 저렸다. 그러다가 문득 그게 맞겠구나, 꿈은 그렇게 영원히 꿈에 머물도록 하는 게 더 낫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려는 노력들의 부질없음과 또 막상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절망의 경험들을 떠올리면서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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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공연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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