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연애했던 기억이 아득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더 편해진다. 아냐,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사람들을 만나 보지만 그저 낯설다.’ 딱한 노릇이다. 마음이 안 가는데 억지로 좋아할 수도 없으니 그저 외로워 외로워 노래나 부를 수밖에 없다. 다들 외로움에 많이 지쳐 보인다. 한번이라도 외로워서 ‘외롭다’고 소리내어 말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 안다. ‘외로움’은 꽤나 힘들다. 외로움이 얼마나 힘든가 하면 ‘외롭다’고 발음하는 것조차 힘들다. 전설원순모음인 ‘외’는 대개 ‘왜’로 발음되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외’라는 발음은 물 건너가고 ‘왜’가 되곤 한다. 제대로 발음하는 것조차 어렵고 힘든 일이다. 섬에 있으면서 나는 주로 외로웠다. 혼자가 되고 싶어 섬에 왔으면서도 혼자 있으면 자꾸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만 했다. 가끔 친구들이 다녀가기도 하고 여행 온 사람들과 만나기도 했지만 며칠이 지나 다들 집으로 돌아가면 외로움은 무슨 사채 고리 빚처럼 불어나 도통 감당이 안 되었다. 함께 있다 떠나는 사람 마음도 그렁그렁하겠지만 비어 있는 신발장과 접힌 빨랫대, 지인이 두고 간 책 한 권과 잘 개켜놓은 이불을 바라볼 때마다 이제 다시 혼자가 되었구나 싶은 마음에 몹시 저릿했다. 전화기만 들면 10초 안에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공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할 수도 있고 미주알고주알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외로움이라니 싶겠지만 허기졌을 때 음식 사진을 보는 것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은 것처럼, 아니 오히려 더 배가 고픈 것처럼 그런 것들은 외로움을 풀어주기보다 외로움에 그리움을 더할 뿐이다. 첨단 시대에 소통 수단도 다양해지고 속도도 빨라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여전히 외롭고 그리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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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공연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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