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탁현민의 그놈의 유혹
섬에 살며 생활낚시인으로 살아간다는 소설가 한창훈은 “인간이 밤에 하는 짓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 가장 훌륭한 일이 밤낚시”라고 썼다. 두달간의 제주 생활을 마감하며 남들 죽어라 일할 때 염장이나 지르는 글을 썼던 것을 반성하며, 비록 훌륭하기는 어려워도 그나마 쓸모 있는 정보라도 제공하는 것이 염치 아닌가 싶어, 제주도 서쪽, 연인들이 가면 좋겠다 싶었던 곳, 혹은 혼자 가서 둘이 되어 오기 좋은 곳, 혹은 혼자라도 좀 덜 외로워지는 곳을 소개한다. 가장 먼저, 이효리가 산다는 신화(?)의 마을 애월로부터, 이제는 여름 한철만 장사하는 곽지해변바(Bar)에 이르는 한담산책로부터 시작한다. 이 산책로는 바다와 나란히 걷는 길이어서 혼자라도 그리 외롭지 않으며 물이 들고 나는 풍경도 늘 새로워 지루하지 않다. 맞은편에서 혼자 걸어오는 사람에게 인사를 해도 부끄럽거나 이상하지 않아 곧잘 함께 걸을 수도 있다. 거기에 곽지해수욕장의 석양도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한림에서 중산간 방향으로는 명월리라는 마을이 있다. 그곳 명월리에는 ‘명월성’이라는 복원한 옛 성터와 누각이 있다. 길가이며 찾기 쉬운 곳이지만 인적이 드물어 오전 시간도 좋고 오후 해질 때도 좋고 으슥한 밤도 좋다. 커플에게는 밤을 추천한다. 누각에 기대앉아 멀리 갈치잡이 배들의 집어등과 한림읍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핸드폰으로 리처드 스톨츠만의 음악을 들으며 가지고 온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다 보면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된다. 여행지에서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면 협재 포구와 협재에서 금능까지의 해변을 걸을 만하다. 만약 걷는 게 별로라면 협재 포구에 가시라. 거기는 가끔 고등어도 낚이고 쥐치도 낚이고 벵에돔도 낚이고 줄돔도 낚인다. 낚싯대 잡고 서 있다고 꼭 고기만 물리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 큰 개를 끌고 카페에 들어갔을 때 여자들의 반응이 어떤지 아시는 남자라면 낚든 못 낚든 낚싯대 드리울 만하다. 모쪼록 건투를 빈다. 커피 한잔 생각나면 한림에서 월림으로 가는 길목에 카페 달숲이나 금능의 트렌드세터들이 모인다는 카페 그곶이 좋더라. 만약 남자 혼자라면 그곶보다는 달숲이 낫다. 미모의 바리스타가 혼자 커피를 내리고 있다. 말을 걸면 곧잘 대답해준다. 외롭지 않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차를 렌트했다면 잊지 않고 한림, 협재, 금능을 지나 신창리에 가보길 권한다. 풍력발전기가 돌고 있는 곳이니 멀리서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종일 바람이 불어 오래 있기 어려운 곳이지만, 커플 둘이서 바다 위로 세워놓은 출렁이는 다리를 건너 한 바퀴를 돌다 보면 어디서든 고백 한번 받을 만하고 어디서든 고백 한번 할 만한 곳이다. 잠잘 곳은 객의게스트하우스나 추의작은집이 낫더라. 여자든 남자든, 혼자 왔거나 친구들끼리 외롭게(?) 왔다면 객의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갈 것이고 커플이라면 추의작은집으로 가길 권한다.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게스트하우스에 왔는데 별 볼일 없었다면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 말 걸어주길 기대하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 이런 곳에서는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걸 잊지 마시라. 추의작은집은 꽤나 섬세하고 아기자기해 동행한 여성들이나 스타일리시한 도시 남자들 다 좋아할 것이다. 공간이 연애에 미치는 영향, 다들 아시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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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공연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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