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재 소설 <2화>
십삼 년이 지나도록 그는 그 기막힌 순간을 떠올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아들을 구하겠다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아내를 말릴 틈이 없었다고 이웃이 전했을 때도 남자는 아내가 왜 하필 그때를 골라 혼자 두부를 사러 갔는지가 궁금했다. 다행이었지만 다행 같지 않았고 불행이었지만 더 불행했다. 여보, 정말이에요. 당신도 알잖아요. 집에서 가게까지는 눈 깜빡할 정도의 거리였다고요. 아내는 그 순간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는지를 강조하며 두 눈을 깜박거렸다. 치명적으로 망막을 그을려 영영 앞을 보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는 순간에도 아내는 두 눈을 비벼댈 뿐이었다. 짓무른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핏빛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몰랐지만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지옥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내는 허공을 더듬으며 비탄에 잠긴 남자를 찾았다. 여보, 당신 어디 있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의 작은 새는 어디로 갔죠?
“개시는 하셨수?”
등 뒤에서 누군가 묻는다. 남자는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린다 씨다. 이 유원지에 남은 마지막 청소부 중 하나인 린다 씨는 자신이 잘리지 않은 건 순전히 실력 때문이라고 했다. 그 돈에 네 몫을 하는 청소부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걸 그치들도 아는 거라우. 린다 씨는 걸핏하면 손가락 네 개를 들이대며 그렇게 말했다. 청소로 두 자식을 키웠다는 린다 씨 앞에서 남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떠올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에게는 몇 대의 카메라가 전부였다.
고개를 흔드는 남자를 향해 린다 씨는 혀를 차며 아내의 안부를 묻는다. 가끔은 린다 씨의 그런 오지랖이 불편하지만 이 유원지에서 이렇게나마 버틸 수 있는 게 그녀 덕분이란 걸 안다. 매표소를 그냥 통과할 수 있게 된 것도, 코딱지만 한 매점 구석에서 언 손을 녹일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녀가 말을 넣어줬기 때문이다. 여기 놀러 오는 사람들은 딱 두 종류로 보면 된다우. 금지된 사랑이거나 아니거나. 믿으라니까. 그것만 알면 돼요. 어차피 젊은 애들이야 이런 데서 이런 사진 절대로 안 찍으니까 패스. 어떻게 아느냐고? 걷는 걸 잘 봐요. 떨어져 걷는지, 나란히 걷는지, 앞을 보고 걷는지, 두리번거리며 걷는지. 남자가 건넨 자판기 커피를 받아 마시며 린다 씨는 그렇게 말했다. 나란히 걷는 초로의 노인들이나 등산복 차림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딴 곳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중년의 남녀를 발견할 때마다 남자는 린다 씨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 봤자 하루에 한두 장, 운이 좋으면 서너 장 찍는 게 고작이었다. 사진으로 벌어먹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남자도 알았다. 화재 이후 살던 곳으로부터 서쪽 끝에 위치한 이 낡은 도시로 옮겨왔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때문이었다. 죽지 못할 바에야 죽은 듯이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도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그러니까 지금 없는 것들―이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살아서는 도저히 죽은 듯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사진관을 열었다. 물론 이제 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남자는 가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희생을 강요한 적도 없었고 누구를 원망한 적도 없었다. 임종 직전의 부모는 모두 남자에게 고생했다는 유언을 남겼고 하나뿐인 여동생도 그런대로 성의껏 뒷바라지를 했다. 자랑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평범하고 반듯한 인생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 남자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럴 때면 아내는 남자가 누운 쪽을 향해 검지를 입술에 대고 속삭였다. 쉿, 지금 막 작은 새가 창가에 날아왔어요. 남자도 아내를 따라 속삭였다.
“어떻게 알았지? 내가 잠에서 깬 걸 말이야.”
어둠 속에서 아내가 방긋 웃는 게 희미하게 보였다.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울든 웃든 그녀의 짓무른 눈 주위는 언제나 시뻘걸 거였다.
“그건 설명하기 어려워요, 여보. 그냥 그럴 거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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