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재 소설 <3화>
이따금 자면서 흐느끼던 아내는 아침이면 말짱하게 깨어났고 그냥 그럴 것 같은 일들은 계속됐다. 그런 일―아내가 잃어버린 남자의 수첩을 찾아준다든지, 길을 걷다가 발밑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것과 같은―이 반복되자 남자의 의심은 풍선처럼 부풀었다.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척하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운명 탓을 하기에는 너무나 어이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다가 운명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아내를 발견한 날이었다. 그게 뭔지 아느냐고 묻는 남자에게 아내는 말했다. 여보, 안 보여도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엄마란 그런 사람들이에요. 기가 막혔다. 남자가 생각하기에 그 말은 아들을 혼자 불에 타 죽게 한 여자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게다가 눈먼 여자가 사진을 들여다보다니. 도대체 말이 되지 않았다. 남자는 충동적으로 아내의 손목을 끌고 버스를 탔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묻지 않고 따라나선 아내는 내내 눈앞의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도심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는 남자의 옷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남자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대합실에 그녀를 멈춰 세웠을 때도 아무것도 묻거나 따지지 않았다. 남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화장실에 다녀올게. 그리고 덧붙였다. 기다릴 수 있지? 아내는 경쾌한 비둘기처럼 여전히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그럼요, 여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게 그거에요. 남자는 도망치듯 등을 돌려 재빨리 아내로부터 멀어졌다. 버릴 생각은 아니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멀찍이 떨어져 아내를 지켜보며 곧 그녀가 자신과 눈을 맞추고 원망 가득한 눈빛을 보내거나 오가는 사람들을 피해 물러서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을 상상하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쥐색 홈드레스에 카디건을 입은 아내는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사람들의 어깨에 어깨가 채이거나 누군가의 가방에 허벅지가 걸려 비틀댔지만 악착같이 처음 남자와 헤어진 그 자리로 돌아왔다. 바삐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녀를 흘깃거렸다. 남자는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이었다. 눈먼 여자는 어디에나 있는데, 왜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쓰며 자신이 기다리는 게 뭔지 잊어갔다. 그러니까 아내가 그랬듯 남자도 무작정 서 있었던 거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마침내 아내가 허공을 향해 입을 달싹거리기 시작했을 때야 남자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두 손으로 카디건 자락을 비틀어 쥐고 주저하듯 노래를 부르는 아내가 보였다. 남자는 그제야 이 낯선 광경이 왜 낯익게 느껴지는지 깨달았다.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내 때문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이 눈앞의 광경―이상하기는 했지만 별로 특별하지는 않은 광경―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예감이 뒤통수를 후려쳤다. 남자의 기억 속에서 걸어 나온 그녀가 눈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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