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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14 09:42 수정 : 2014.02.19 10:51

김선재 소설 <5화>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유원지를 가로지른다. 비는 그쳤지만 이미 온몸과 발은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겁다. 젖은 옷에서 낡고, 찌들고, 피로한 삶의 온기가 피어오른다. 오늘처럼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한 날은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이다. 추억을 만들기 위해 거리의 사진사에게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해만 뜨면 카메라를 들고 나와 쇠락해가는 이 유원지나 연안 부두 근처를 헤매고 다니는 걸까. 차라리 사진관에 앉아 증명사진을 찍으러 올 손님을 기다리는 편이 나을 텐데. 린다 씨도 남자에게 길에서 몸을 축내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증명사진을 사진이라고 할 수 있나요. 남자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다지 신통한 대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배경이 상관없는 사진들―그러니까 증명사진이나 여권사진과 같은 것들―만 찍으며 살기 싫었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그것들은 대부분 ‘나’가 나임을 증명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사진이었다. 남자가 생각하기에 사진은 기억과 관련된 영역의 일이었다. 그게 진짜였다. 물론 기억과 증명은 얼핏 비슷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증명에는 기억이 필요 없었다. 그건 영혼의 문제예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진이 처음 발명됐을 때부터 그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영혼이 없는 사진은 가짜였다. 그러나 그런 말을 꺼낼 처지가 아니었다. 사진이 뭐 별건가, 찍으면 사진이지. 다만 린다 씨가 그렇게 대꾸하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남자는 중얼거리다 멈춰 선다. 길가의 야트막한 산기슭에서 새소리가 요란하다. 까마귀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부쩍 자주 보인다. 여보, 까마귀가 울면 누군가 죽은 거래요. 아내는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귀를 막으며 그렇게 말했다. 또 누가 죽은 걸까요. 왜 작은 새들은 돌아오지 않는 걸까요. 그런 말을 하는 아내는 죽은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늘어난 티셔츠 사이로 아내의 동맥이 팔딱거리는 게 보였다. 남자는 아내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쇼하지 마. 딱 한 번이었다. 아내는 벽에 기대 울었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난 줄도 모르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줄도 모르고 울기만 했다. 그 모든 게 살아 있는 여자가 부리는 호사 같았다.

어느새 유원지를 들썩거리게 했던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머리 위를 떠돌던 까마귀들마저 숲으로 되돌아가자 주위는 한층 더 적막하다. 대관람차 위에 걸린 구름이 점점 더 구정물처럼 흐려지는 걸 바라보던 남자는 유원지의 출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오늘은 뭘 해도 헛수고일 거라는 뒤늦은 판단 때문이다. 물론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사진관에 딸린 방 한 칸이 전부인 그 집에서 아내와 부대끼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우선 이곳에서 나가 도심으로 가는 버스를 탈 생각이다. 어디로 갈 건지는 언 몸을 녹이며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다. 마음을 정하자 걸음이 바빠진다. 늘 바쁘게 걸었지만 가고자 하는 곳에 무사히 도착한 적은 별로 없었다. 아버지와 숙부가 운영하던 고물상이 말 그대로 고물상이 되면서부터였다. 근처의 주둔부대가 철수를 결정한 즈음이었다. 미제가 옛날처럼 귀한 시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여파는 컸다. 오랫동안 풍요로움에 길든 숙부와 아버지는 자신들의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도미노처럼 차례로 넘어졌다. 아버지가 쓰러지자 숙부는 남은 재산을 정리해 사라졌고, 남겨진 가족들은 자신들이 왜 야반도주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살던 동네를 떠났다. 그 와중에 남자는 떠밀리듯 가장이 됐고 가장이 뭔지도 알기 전에 아들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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