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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소설 <아무도 거기 없었다>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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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소설 <6화>
아내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삶에 빠르게 적응했다. 남자에게 고통이나 불편을 호소하거나 도움을 구하지도 않았다. 모든 면에서 시력을 잃기 전보다 훨씬 더 능숙해 보였다. 날카롭게 줄을 세운 바지를 입거나 푸른빛이 돌 정도로 눈부시게 흰 셔츠를 입는 게 남자에게는 여전히 당연한 일상이었다. 남자는 종종 아내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들깨된장국을 떠먹으며 남자가 물었다. 아내가 해주는 음식 중에서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아내는 그런 남자 옆에서 손을 숨기며 방긋 웃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일에 더 집중하게 돼요. 오히려……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여보.”
남자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더 편하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화가 나서 속이 불편했다. 물론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아내가 울까 봐 두려웠다. 아내가 우는 게 보기 싫었다. 우는 것조차 변명 같았다. 그런 남자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아내는 울며 변명했다. 여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아내는 그렇게 말하며 또 울었다. 아들이 죽은 후 끝없이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끝없이, 라는 말은 현실적인 말이 아니었다. 끝없이, 라고 말하면서도 언젠가 어떻게든 끝이 날 거라 생각했다. 남자가 모르는 건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 사실 때문에 남자는 더 자주 화가 났다. 그러던 어느 밤, 아내가 등을 돌리고 누운 남자의 맨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여보, 방금 꿈에 아이가 왔어요. 우리의 아이 말이에요. 너무 반가워서 제가 꼭 껴안았더니 그만 그 아이가 제 뱃속으로 숨어버리지 뭐예요, 글쎄. 이게…… 무슨 꿈일까요. 아내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등뼈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꼭꼭 눌렀다. 그건 몹시 친밀하면서도 자극적인 손놀림이었다. 남자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맨살에 닿는 아내의 손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어디선가 밤새가 울었다. 푸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몇 년 전 아내가 버스 터미널에서 불렀던 노래가 떠올랐다. 한 아이가 새를…… 두 사람이 죽은 새를…… 한 아이가 우리를…… 두 사람이 죽인 새를…….
그건 《머리 위의 새》라는 동화책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남자는 아들에게 그 책을 읽어주던 순간이 사진으로 남았음을 기억해냈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한 아내가 찍은 사진이었다. 그래서 거기 있었지만 거기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길 없는 사람. 아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사이에 아내의 손은 등에서 가슴으로 넘어와 남자의 쌀알 같은 젖꼭지를 손바닥으로 쓸기 시작했다. 여보.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예요. 아내가 남자의 등 뒤에서 그렇게 속삭였을 때 남자는 조용히 아내에게 물었다. 우리가…… 도대체 뭘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오락가락하던 비는 어느새 싸락눈으로 바뀐다. 갈 곳을 궁리할 수 있는 날씨가 아니다. 차라리 나오지 말걸. 남자는 바닥에서 소금 알갱이처럼 튀어 오르는 눈을 보며 생각한다. 바닥을 구르는 싸락눈을 몰고 바람이 지나가는 걸 보고 있자니 몸속에서도 바람이 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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