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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28 09:36 수정 : 2014.03.11 09:57

조영석 소설 <5화>



제상은 겨우 일어나 앉았다. 휘파람 소리와 참방거리는 소리가 난무했다. 제상은 등허리를 만져보았다. 퉁퉁 부어 있기는 했지만, 창상이 아니었다. 제상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살을 보았다. 촉이 없는 살대가 부러져 있었다.

-박 공, 계시오?

태수였다. 명화가 마당으로 나오다가 화들짝 놀라 정지로 들어갔다.

-기별이 또 왔소이까?

제상은 일어나 수령을 맞았다. 사립 그림자에서 사람이 하나 더 나왔다. 제상은 어둠 속에서 보이는 사람의 형태가 낯이 익었다.

-왕자님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제상은 길게 읍하고 방으로 안내했다. 보해가 앉고 맞은편에 제상이 앉았다. 태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방을 나갔다.

-박 공, 오랜만이오.

-다리는 좀 어떠신지요? 뼈가 상하셨다고 들었는데.

-덕분에 튼튼하오. 박 공은 내 목숨의 은인이오. 박 공이 아니었다면 난 평양성에서 늙어 죽었거나 살해당했을 거요.

-왕자께서 타고나신 명입니다.

-공께서 적국의 백성들에게 베푼 것들 때문에 그들이 그 밤에 촉이 없는 화살을 쏘지 않았소이까? 허허허.

-그것을 어찌?

-나도 여러 대 맞았소이다.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제 덕이 아닙니다. 상께서 보내주신 쌀과 금이 왕자님을 구한 것이지요. 또한 그 쌀과 금은…….

제상은 입을 닫았다. 보해는 어른거리는 등잔 너머 초로의 사내를 보았다. 붉은 기운이 있으나 초점이 흔들리지 않는 눈이 들개와 같았다. 무리 지어 다니지 않는 들개라, 보해는 제상이 서라벌 사람으로 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명은 받으셨소?

-네, 미사흔(未斯欣)께 다녀오라는 명은 들었습니다만.

-내 딴말은 하지 않겠소. 한 번만 더 다녀와 주시오. 임금의 동생이기도 하지만, 나도 미사흔이 보고 싶구려. 계림에 공만 한 인물이 또 어디 있겠소?

-저만한 인물은 많을 것이오나, 저만큼 미천한 인물은 또 없을 테지요.

태수가 기척을 내며 문을 열었다.

-왕자님, 서라벌에서 급히 찾으신다고 하옵니다.

-거, 형님께서도 참. 아무튼 박 공, 모레요. 모레 대마로 가는 배가 율포(栗浦)에서 뜨오. 내일 서라벌로 와서 임금을 알현하고 떠나시오.

사람들이 떠난 방은 고즈넉했다. 짚방석에서 귀뚜라미가 튀었다. 제상은 생선 기름이 그을음을 뱉는 것을 오래 지켜보았다.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이리들이 무리 지어 산을 타며 울었다. 마을 어귀까지 내려온 모양이었다.

-박 공, 장부로 태어나서 임금의 명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이오. 나 같은 필부야 시골구석에서 종이 쪼가리나 뒤적거리다 끝나는 삶 아니요? 다녀오시구려. 이번 일까지 해내시면, 서라벌에 큰 집과 전답을 받으실 게요. 성골과의 인맥이 아니시오. 이참에 신분까지 갈아타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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