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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03 09:54 수정 : 2014.03.11 09:54

조영석 소설 <추구> ⓒ이현경



조영석 소설 <6화>



제상은 태수의 말을 떠올려보았다. 장부로 태어난다는 것이 자신이 원한 것이던가. 아니 제상은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조차 납득이 가지 않았다. 친부모는 본 적이 없고, 눈을 뜨고 첫울음을 터뜨렸던 곳이 어딘지도 모를 전쟁터였다. 동냥젖을 먹고 자란 제상은 의붓아비도 어미도 모두 죽고 사고무친이 되었다. 하늘은 만물을 추구(芻狗)와 같이 여긴다고 했다. 제상은 제사가 아닌 날도 지푸라기 개를 만들어 놀다가 태웠다.

-나으리.

명화가 방으로 들어왔다. 벌써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으니 어쩐 일인가 싶었다. 나어린 여자가 다리를 세우고 맞은편에 앉았다. 갸름한 얼굴에 얇은 입술이 붉었다. 머리숱이 짙었고 이마에 잔머리가 새까맣게 돋아 있었다. 쌍꺼풀이 없는 가느다란 눈이 대마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제상은 명화의 얼굴을 너무 오래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나으리.

-그래,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명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덕의 처를 부르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제상은 명화가 아득히 먼 곳에서 고함을 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리는 들리나 입 모양은 알 수 없는 거리에서 명화는 다가오다 멀어졌다. 왜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을 때에도 명화와 이야기를 아주 나눌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제상은 곡진하게 말을 전했고, 명화는 간절하게 제상의 입을 응시했다. 매 순간 그 둘은 진심을 다해 생각과 마음을 전하고 받았다. 제상은 감포 해변 바닷새들의 사체 가운데서 명화를 발견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으로 집에 사람을 들인 일이었다. 고양이나 들개, 까마귀들은 제상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들은 제상에게 와서 말벗이 되어주었고, 보리나 약병아리 한 마리씩을 받아갔다. 제상과 교류하였으나 제상의 것은 아니었다. 제비 집도 여러 채 지어져 있었다. 제상은 세상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나마 고양이들이 가장 오래 제상의 집에 머물곤 하였다. 평양에 다녀오느라 비워두었던 집에서 제상을 맞아준 것도 고양이들이었다. 마당과 정지 곳곳에 쥐들의 사체가 모여 있었다. 제상에게 한집에 살게 된 사람은 대마 여자 명화가 처음이었다. 제상은 자신이 받아들인 첫 사람이 여인이라는 것과 육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신기했다. 마을 사람들은 홀아비로 늙은 제상을 용왕이 어여삐 여겨 처를 보내준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혼례를 치른 것도 아닌데 그날그날 캐온 전복이나 생선, 나물들을 한 소쿠리 마당에 모아주고 갔다. 제상은 명화를 안지 않았지만, 명화가 마음에 들어왔다. 명화의 부모가 누구인지, 대마에서의 삶이 어땠는지 아는 것이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날 명화는 바다에서 살아남아 해변에 있었고, 제상은 명화를 발견하고 남은 삶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제상은 명화와 지내기 시작한 다음부터 추구를 만들지 않았다. 지푸라기 개로 살더라도 명화와 한세상 살아보고 싶었다. 더듬더듬 이어지는 명화의 말이 좋았고, 육지 여자들보다 반들반들한 피부가 좋았다. 짙은 머리숱이 좋았고, 명화에게서 나는 비릿한 갯내음이 좋았다. 제상은 단둘이 있을 때 이야기를 나누던 방식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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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조영석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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