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석 소설 <7화>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거라. 걱정이 되는 일이 있느냐?
끄덕. 명화는 잔잔한 파도가 이는 눈빛으로 제상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만덕의 처에게 배우기는 했지만, 계림 말을 아직 완전히 헤아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명화는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곤 했다.
-내가 떠나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느냐?
끄덕.
-만덕네에게서 들었느냐?
끄덕.
-그래, 여기서 혼자 살 수 있겠느냐?
명화의 눈에서 잔잔하게 일던 물결이 왈칵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제상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를 잃어야 한다는 사실이, 자신이 단 하나 원하는 사람을 잃어야 한다는 사실이 사무쳤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임금의 아우는 너무 멀리 있었고, 임금의 고통은 자신과 무관하였으나 명화의 눈물은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대답을 해야지. 여기서 혼자 살 수 있겠느냐? 여기서 혼자 살 수 있겠느냐? 여기서 혼자 살 수 있겠느냐?
제상은 와락 명화를 안았다. 가슴뼈가 으스러지도록 명화를 안고 또 안았다. 제상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큰 울음을 울었다. 마을 어귀까지 들어왔던 이리 떼가 귀를 두어 번 떨고 산기슭으로 돌아갔다.
율포에는 광목으로 돛을 댄 배 한 척이 묶여 있었다. 노꾼이 제상에게 읍하고 제상이 타고 온 말에서 짐을 부려 배에 실었다. 포구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물새들이 암초들 틈에서 조개들을 쪼아 먹었다. 명화가 손을 모으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인근 마을에서 온 경마잡이가 명화를 말에 태워 삽라까지 데려다 줄 것이었다. 해가 뜬 지 몇 식경이 지났을 시간이었지만 바다는 아직 어둑어둑했다. 구름이 멀리 시야가 닿는 곳까지 잔뜩 내려와 있었다. 바람이 계속 불어왔지만, 구름은 모양을 바꾸지 않았다. 전날 궁에서 임금은 친히 옥좌에서 내려와 제상의 손을 잡고 울었다.
-공에게 우리 형제들의 한풀이를 다 맡기는구려. 선왕이 내 부왕에게 받은 원한이 우리 형제들에게 온 것인데, 우리의 원한은 또 어찌 공에게 간다는 말인가.
세상의 이치가 다 그러하다는 말을 제상은 목구멍 깊숙이 꾹꾹 눌러 삼켰다.
-내가 두 아우 생각하기를 좌우의 팔과 같이 했는데 지금은 단지 한쪽 팔만 얻었으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도와주시게.
-폐하, 서라벌 내에 왜의 세작들이 있을 것이오니, 제가 계림을 배신하고 왜로 넘어갔다는 소문을 내시옵소서. 그리하시면 신이 일을 도모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옵니다.
-그래, 내 무엇이든 하지. 미사흔만 데려다 주게나.
왕은 주저앉아 울었고, 내관들이 왕을 부축하여 편전을 나갔다. 제상은 왕의 눈물이 남은 손바닥을 기둥에 문질러 닦았다.
-이곳 율포에서 미해 왕자가 돌아온 것을 보거든 그날로 태수를 찾아가거라.
제상은 명화의 손을 잡고 말했다.
끄덕.
-진정 알아들었느냐?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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