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석 소설 <9화>
-박 공의 얘기는 이미 들었소.
미사흔은 화살을 다듬고 있었다. 촉을 박기 전, 살대의 끝을 조심스럽게 쳐냈다. 미사흔은 왜에서 사냥을 즐겼다. 왜왕은 계림의 왕자가 적적함과 향수를 달랠 수 있도록 적당히 풀어주었다. 미사흔이 있는 동안 계림과의 무역이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계림의 왕이 죽는다면 왜왕은 미사흔을 돌려보내 줄 생각이었다. 형이 살아 있는 동안 미사흔은 돌아갈 수 없을 것이었다. 제상은 미사흔이 다듬은 살을 잡아 쓰다듬어보았다.
-그래, 형님들은 잘 계시는가? 자네가 복호 형님을 고구려에서 구해내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렸다는 것은 잘 들었네. 멀리서도 기쁘기 그지없었네.
제상은 미사흔의 말에서 어떠한 떨림도 느껴지지 않아 식은땀을 흘렸다. 미사흔이 형들을 진정으로 보고 싶은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제가 왕자님도 계림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진심인가? 어떻게?
갑작스러운 제안에 미사흔은 몸이 단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 평온한 자세로 살을 다듬던 모습은 간데없었다.
-모레 사냥을 나가시면, 사냥터 별장에서 저와 함께 기거하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칭병(稱病)을 빌어 하루를 벌겠습니다. 인근 포구에 제가 타고 왔던 목선이 있을 것입니다. 왕자님께서 소리쳐 부르시면 노꾼이 근방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평범한 노꾼이 아니오라 서라벌의 장수이오니 믿고 배에 오르소서. 하룻밤이면 해안을 꽤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러면 공은 어찌하려고 그러오. 내가 달아난 것이 발각되면 무사하지 못할 터인데.
-애초에 이곳에 올 때, 목숨은 버리기로 하고 왔습니다. 왕의 명을 따르는 데 죽고 살기를 가리겠습니까?
-왜놈들은 잔인하기가 그지없는데, 공이 모진 고초를 어찌 견디려는지 모르겠소.
-가시지요. 저는 살길이 따로 있을 것이니 염려치 마시옵소서.
미사흔은 제상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소리는 없었으나, 울음의 곡진함을 제상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계림에 가면 형님께 아뢰어 해마다 제를 지내고 공의 덕을 기리는 비를 서라벌에 세우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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