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석 소설 <10화>
명화는 제상이 떠난 이후 매일 율포에 나가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달포쯤 지나자 경마잡이 없이도 말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제상은 몇 달이면 미사흔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명화는 어째서 미사흔을 기다리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명화는 제상의 말을 그냥 믿었다. 앞뒤가 없어도 믿음이 가는 말귀가 명화는 신기하였다. 두 달 보름이 지난 날 새벽, 동이 트는 먼바다에서 목선 한 척이 미끄러져 오는 것을 명화는 보았다. 명화는 짚신이 벗겨지는 것도 모른 채 언덕을 뛰어올라 벼랑 끝에 섰다. 제상이 타고 떠났던 그 배였다.
며칠 뒤 서라벌에서 한 무리의 군사들이 제상의 집에 들이닥쳤다. 뒤늦게 태수도 불려 나왔다. 장군이 오 척이나 되는 긴 칼을 휘두르며 집 안을 들쑤셨다. 고양이들이 후다닥 담을 넘어 사방으로 도망쳤다.
-이 집에 왜년이 하나 있다고 들었다. 반역죄인 박제상의 처라고 하던데.
-아니, 박 공 같은 충신에게 반역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태수는 부들부들 떨며 말에서 내려 읍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박제상은 제 놈을 낳아 먹여 키운 계림을 배반하고 왜놈들에게 몸을 팔았다.
-아니, 폐하의 아우님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옵니까?
순간 태수는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장군은 태수의 목에 칼날을 들이댔다.
-네놈이 죽고 싶은 것이냐? 천한 것이 폐하의 혈족을 입에 담다니. 다시 한번 천한 입을 놀린다면 목을 칠 것이야.
-아이고 나으리.
태수는 아예 무릎을 꿇고 마당에 이마를 찧었다.
-깡그리 뒤지고, 불을 질러라.
장군의 노여움에 흥분한 말이 앞발을 치켜들었다. 태수는 재빨리 몸을 피하며 제상의 집 밖으로 나왔다. 제상의 집 여기저기서 불길이 너울거리며 치솟고 있었다.
그날 새벽 율포 앞바다는 잔잔하였다. 동이 트면서 바람은 서쪽으로 몸을 틀었다. 먼바다에서 파도는 들끓었다. 노꾼은 연신 코를 풀면서 명화를 채근했다. 태수는 말을 매어두었다. 말이 차가운 콧바람을 연신 뿜어댔다. 태수는 크르릉거리는 말의 콧잔등을 두어 번 토닥여주었다.
-잘 가시게. 가서 박 공과 여생을 보내시게.
태수는 미투리 두 켤레를 명화에게 쥐여 주었다. 잠깐 스친 명화의 손이 얼음장처럼 찼다. 명화는 길게 읍하고 노꾼을 따라 배에 올랐다. 벌써 사쓰마를 두 번째 가는 목선이었다. 이번에 왜로 가는 검은 바다를 건너면 물먹은 배의 바닥은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노꾼은 첨벙거리며 배를 밀다가 날렵하게 몸을 띄웠다. 동이 튼 율포 앞바다는 금세 금빛으로 물들었다. 금빛 물결은 점점 거세지면서 명화를 태운 목선을 먼바다로 밀어내었다. 노꾼이 기우뚱거리며 노를 저었다. 태수는 명화가 무사히 저 바다를 건널 것인지, 건넌다면 제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천지는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추구와 같이 여긴다고 노자는 말하였다. 태수는 여린 지푸라기 개 한 마리가 물결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을 눈이 시큰거릴 때까지 바라보았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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