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5.22 17:12
수정 : 2007.05.2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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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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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우리에게 2007년은 자유무역협정의 해인가 보다. 그것도 세계 최대의 선진경제만 상대한다. 미국과의 협상을 서둘러 끝내더니 이번엔 바로 유럽연합(EU)과 맞섰다. 유럽연합과의 협상은 상대가 거대 선진경제라는 점이 주는 두려움 외에도 그가 강력한 초국적 연합체라는 점에서 무언가 새로운 차원의 긴장을 느끼게 한다. 지금 우리는 한 지역의 여러 나라들이 하나로 뭉쳐 국제사회에서 단일 주체로서 행동하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바로 그 대상이 되어 경험하고 있다.
유럽연합만이 아니다. 비록 제도화 정도는 아직 유럽연합에 못 미치지만 북미주, 동남아, 중동, 남아프리카, 중남미 등의 여러 국가들이 각기 지역 공동체를 형성해 가고 있다. 이제 그런 세상이다. 지역주의는 이미 대세다. 나라가 주체가 되는 ‘국제 정치경제’가 아니라 지역이 주체인 ‘역제(域際) 정치경제’의 시대가 개막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도 지역주의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부터의 일이다. 외환위기를 겪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압력에 시달리며 지역주의적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절감한 동남아의 아세안 10개국과 동북아의 한·중·일 세 나라는 ‘아세안+3’으로 모였다. 김대중 정부는 여기서 발군의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13개국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자유무역협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체를 건설한다는 구상도 당시 한국의 주도로 나온 것이었다. 일국 경제에 머물다가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갈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 공동체 형성을 위한 노력은커녕 우리는 오히려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로 스스로 뛰어들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안달인 모습이다. 물론 우리 정부는 이 협정이 동(북)아시아의 협력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그러한 발전은 우리를 중심으로 진행돼 가리라고 한다. 또다른 허브국가론이다. 그러나 왜 그렇게 된다는 것인지,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냥 믿으라고 한다.
상식적으로만 봐도 정부의 낙관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동아시아 안보관계에서 미국의 위치를 돌아보면 더구나 그러하다.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는 다자 안보협력 체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일본·타이·필리핀 등 역내 주요국들은 각기 미국과 양자 동맹을 맺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바퀴통’이라면 이들 나라는 각각 ‘바퀴살’에 해당한다. 즉 동아시아 나라들은 미국을 중심에 두고 서로는 모두 떨어져 있다.
양자주의적인 미국의 동아시아 자유무역협정 정책을 보건대 이 지역에서의 경제관계 역시 안보관계를 닮아갈 가능성이 크다. 싱가포르에 이어 한국, 그리고 타이와 말레이시아 등도 연속해서 미국과 양자간 협정을 맺어 간다면 경제 영역에서도 이들 나라는 미국을 허브로 하여 고작해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관계로만 지내게 된다. 물론 미국과는 별개로 역내 국가들만의 동아시아 자유무역협정 체결도 가능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10년을 노력해도 큰 성과가 없을 정도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젠 역내국들끼리의 지역주의 발전을 경계하는 미국마저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과거보다 조건이 나아질 리는 없다. 이대로 간다면 동아시아 공동체는 요원해질 수 있다. 제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좌파 신자유주의’류의 호언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 하나만을 향해 매진해도 늘 잡을 수 있었던 건 아니지 않았는가.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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