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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2 17:15 수정 : 2007.06.12 17:15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세상읽기

최근 보도된 ‘국민 이념성향 조사’에서 자신을 보수라고 평가한 이들이 29.9%, 중도라고 평한 이들이 35.5%, 진보가 34.6%였다.(<한겨레> 5월21일치 5면) 또 ‘앞으로 어떤 성격의 정당이 우리나라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11.4%만이 보수정당이라 답했고, 67.6%는 중도(28.4%) 혹은 진보정당(39.2%)이라고 하였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보수 이념을 선호하지 않으며, 보수보다는 중도나 진보정당이 이 나라를 주도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과연 누가 국민의 이런 바람을 만족시킬 수 있겠느냐다.

정상 상태라면 한국의 현 대통령제 아래에서 실제로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정당은 대통령을 선출한 집권 여당이다. 그렇다면 67.6%라는 압도적 국민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려면 대통령이 중도나 진보정당에서 나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노동당이 올해 대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고무적이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소위 ‘범여권’이라는 정치세력들의 행보다.

한나라당이 아닌 것만으로 그 정당(세력)이 중도 혹은 진보로 평가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약자에 대한 배려’ 정도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최소 기준이다. 이 기준을 따르면 현재 범여권 세력들이 분명히 진보나 중도정당을 만들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통합이든 대통합이든 그들은 그것으로 세워질 통합신당(들)이 주요 정책 영역에서 어느 정도 약자 배려를 실천한 것인지에 대해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우선 그들 자신의 상당수가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매우 민감하게 여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비정규직 같은 문제에 대해 보수와 진보에 걸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들이 모여 정체성이 분명한 이념정당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쩌면 그들은 이념 정당보다는 새로운 ‘대통령당’ 창당에 더 큰 관심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과반의 우리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것은 한나라당의 집권 저지 그 자체가 아니라 이념과 정책 지향성이 명확한 중도나 진보 정당의 집권이다. 그렇다면 범여권 세력은 어떻게든 대통령만 만들려 할 게 아니라 우선 제대로 된 이념 정당부터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정당이 아니라면 아무리 많은 국민이 진보나 중도를 선호할지라도 그들의 표가 통합신당의 대통령 후보에게 집중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설령 극심한 산고 끝에 정체성이 흐릿한 대통합신당이 창당되고 거기서 요행히 대통령이 나와 새 정부를 구성한다 할지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런 정부가 내놓는 정책은 예컨대 ‘좌파 신자유주의’거나 혹은 ‘우파 공동체주의’적일 공산이 크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렇다고 중도적 일관성도 갖추지 않은 잡탕형 정책의 양산이 예상된다. 이것이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결과일 리는 없다. 아마도 2012년 초를 전후해 우리 귀에는 또다시 새로운 통합신당 논의가 들려올 것이다.

정녕 국민의 바람을 중시하는 범여권의 대권주자라면 이번 대선만을 목표로 일회용 정당 급조에 나설 일이 아니다. 이번이 어렵다면 오히려 다음 대선이 더 좋다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이념 정당 만들기에 골몰해야 한다. 물론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것 같아도 결국은 정도로 가는 게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는가.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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