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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8 17:41 수정 : 2007.06.28 17:41

이윤재 코레이 대표

세상읽기

아직 대선 후보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신문에는 연일 공약 관련 기사가 가득하다. 그 태반은 공약 내용의 검증이라기보다는, 부당한 개입과 정치 공작이 있었느니 마느니 하는 후보자끼리의 짜증스런 샅바싸움이다. 앞으로 각 진영의 후보들이 결정되면 공약을 둘러싼 치고받기는 아마 한층 더 치열해질 것이다.

공약 중심 선거는 이른바 지역주의 선거, 이미지 선거의 대안으로 각광받는다. 공약 선거는 정책 중심의 선거라는 다른 ‘이미지’ 때문에, 마치 이미지 선거와 대립항에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특히 5년 전의 대통령 선거를 아예 유권자가 ‘잘 몰라서 실수한 사건’으로 단정하는 일부 언론들은, 이번 12월 선거에서만은 반드시 공약을 따져보고 투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래야만 민주시민으로서 품격을 지키는 것으로 훈육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당위론을 전파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내심 대선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고 싶은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공약이 향후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를 뽑는 적절하고 우선적인 기준이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도 선거 공약은 그 속성상 정직하기 어렵다. 정부의 정책 변화에는 대부분 관계자의 이해가 엇갈리고 막대한 비용이 따른다. 그걸 어떻게 조정할지 밝히지 않는 공약은 함량 미달이고 실현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득표에 불리한 부담스런 내용을 앞장서 밝힐 후보는 거의 없다. 후보의 당면한 목표는 유권자를 (소극적으로) 속이더라도 대통령이 되는 것이지, 정직하고 도덕적인 후보로 선거에서 패배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기고 보자’는 강력한 유혹과 주변 압력을 물리칠 수 있는 심성을 가진 사람은 아예 후보 대열에 들어가기조차 힘든 게 우리 정치 현실이다.

나아가,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대부분의 유권자에게, 공약을 읽고 평가할 시간적, 심리적 여유는 기대할 수 없다. 평범한 시민이라면 5년 만의 대통령 선거에서 마음껏 후보들을 비판하며 일상의 긴장에서 벗어나려 한다. 대통령 선거의 흥행을 즐기고 싶지, 바쁜 시간을 쪼개어 공약을 따지고 비교하는 두뇌노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공약은 겉으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약속 같지만, 사실은 공약을 들여다보고 해석할 여유와 관심이 있는 소수의 식자 계층에게만 효용이 있다. 그래서 공약은 추상적인 담론이기 십상인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률 얼마를 달성하겠다든지, 성장 동력을 어디에 두겠다든지, 국토를 어떻게 개조하겠다든지 하는 공약들을 아무리 들여다본들, 거기에서 민생이 언제 어떻게 나아질 것이냐에 대한 후보들 사이의 선명한 차이는 읽혀지지 않는다.

결국 공약도 이미지 정치의 한 부분일 뿐이다. 어떤 공약에 맞는 후보가 나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후보가 먼저 나서고 그 다음 공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약에다 유독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공약을 기준으로 투표해야 품위 있는 시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계급적이고 비민주적인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유권자 개개인의 등가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공약이 아니더라도 후보자들의 출신, 인격과 품성, 그리고 자질과 능력을 모두 고려하여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다. 또 아무리 공약 중심의 선거를 신봉하고 주장하는 학자나 언론인이라도 정작 공약 때문에 개인적 선호를 버리고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공약 정치가 일종의 계몽 정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운 이유다.

이윤재 코레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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