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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7.05 18:34 수정 : 2007.07.05 18:34

조효제 하버드대 로스쿨 펠로

세상읽기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이 가까워지면서 민주진보 진영에서 이런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대통령제 아래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하는 문제는 특정 정치세력의 승패를 떠나 사회 전반의 배경음악을 바꾸는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인지 언론들도 앞다투어 새로운 구상에 대해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 방면의 전문가와 원로들에게 길을 묻는 일도 잦아졌다. 나는 이런 글을 열심히 읽는 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전문가들의 탁견에 무릎을 친다. 그런데 이러한 길찾기 노력에 공감하고 원로들의 고견에 동의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미진한 느낌이 남는다. 전문가들이 이런저런 처방을 내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한 말씀’을 청하는 우리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용하다는 도사를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러한 길찾기 방식은 은연 중 두 가지 전제를 깔고 있다. 지금까지 시도한 정치·경제·사회 개혁이 잘못된 것 같으니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일종의 새 출발론이 그 하나요, 그렇기에 새로운 구상에 근거한 어떤 전반적인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모델론이 또 하나다. 새 출발론과 모델론은 전략적 사고에 익숙한 이론가에게 적합한 연산방식이다. 전략적 사고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현실과 결부될 때만 쓸모있는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경험적 영역에서 진화해 온 우리 공동체의 현실을 외면한 채 새로운 아이디어만 찾을 때 우리는 언제까지나 아마추어의 열정으로만 세상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훈수 민주주의’를 자청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들이 ‘민의 통제’와 ‘민의 평등’ 원칙을 모든 영역에서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찾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정치발전의 시행착오로부터 실질적인 교훈을 얻고,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항수와 변수를 냉정하게 직시하는 일이다. 민주화 20년의 쓴맛 단맛이 고스란히 보존된 보물창고를 외면한 채 어떤 획기적인 구상을 고대하는 것은 민주적이지도 지혜롭지도 않다.

우선, 우리의 전체 사회 발전을 정치제도 차원의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민주주의 과정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 차원의 작은 개혁 시도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분석하며 홍보해야 한다. 또한 범민주 진영 출신으로 국정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사후 기여를 끌어내는 과제도 필요하다. 개인 차원에서 이들의 공과를 평가하는 일과는 별개로 그들의 경험을 우리 전체의 자산으로 공유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개혁이 어째서 어려운지, 왜 민주와 참여를 표방하는 정부도 집권권력과 시민권력의 간격을 메우기 힘든지, 관료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지, 자원 배분의 기득구조를 깨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서 이들의 체험보다 더 귀중한 정보가 없다. 당사자들도 공개적으로 입을 열어야 한다. 잘했으면 잘한 대로, 못했으면 못한 대로, 안목이 바뀌었다면 바뀐 대로, 시민사회에 실망했다면 실망한 대로, 능력이 부족했다면 사실대로 솔직하게 발언해서 자기 친정이 실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신문도 전직 개혁가들을 다루는 기획물을 연재하라. 학자들도 정책사례를 연구하라. 출판계도 이 황금어장을 놓치지 말라. 지금이야 모두들 코앞의 대선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이런 일이 우리 민주주의에 훨씬 더 중요한 기초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조효제 하버드대 로스쿨 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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