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7.12 17:26
수정 : 2007.07.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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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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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인간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노동’이나 ‘일’로 개념화되는 생산 지향적인 활동과 그 외 활동인 ‘놀이’로 개념화되는 활동이다. 전자는 성인의 경우에 직업 관련 활동이 대부분이고, 학생에게는 공부가 될 것이다. 입시와 학업성적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놀이’는 ‘공부’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만 간주된다. 그러나 ‘일’이나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그로 말미암은 정신적 압박과 긴장도 함께 증가하는데, 이런 긴장을 해소시켜 준다는 점에서 사실 놀이는 중요하다.
최근 초·중·고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 중에는 ‘기절 놀이’라는 것이 있다. 일부러 목을 조르거나 가슴을 세게 눌러 일시적으로 실신하게 하는 과정에서 환각을 경험하게 되는 놀이로, 여럿이 모여서 혹은 혼자서 끈이나 스카프를 통해 기절한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기절놀이 도중의 경험을 상세히 설명하는 생생한 경험담이 쉽게 검색되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이런 놀이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신체적·심리적 측면에서 다분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저산소증으로 숨질 수도 있고, 혼자서 이 놀이를 하다가 잘못하면 쓰러지면서 뇌진탕 등의 부상을 당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초등학생이 집에서 혼자 기절놀이를 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였으며, 기절 놀이 도중 쓰러지는 과정에서 머리를 다쳤다고 보도된 사례도 여럿이다. 신체적·심리적 위험이 따르는 것이 분명함에도 왜 이런 위험한 활동을 하는 것일까?
인간은 위험할지라도 흥분되는 일을 추구하는 위험추구 성향을 가지고 있다. 진화론적으로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한 끝에 수많은 성취를 얻어 왔으며, 이 성공적인 성취에서 얻는 쾌락을 위해 위험 추구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위험한 행동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누적된 긴장을 해소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불안·걱정·스트레스들을 경험한다. 예컨대 교통정체나 상대방이 약속을 어기는 것과 같은 일상의 경험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는데, 그때그때 해소하기 어렵다. 이렇게 해소되지 않은 스트레스 경험에 대한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쌓이게 된다. 이런 잔여 스트레스의 여러 해소방법들 중 하나가 바로, 다른 더 큰 긴장을 만드는 것이다. 더 큰 긴장의 위험한 활동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잔여 긴장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나 위험한 스포츠(익스트림 스포츠)가 취미라는 사람들에게 이 활동을 즐기는 때가 언제인지를 알아본 설문 결과, 일상생활에서 소소하게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 이런 활동을 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또 이에 대한 욕구도 높았다고 한다.
기절 놀이는 과다한 컴퓨터 게임이나 자극적인 매체 등의 탓에 자극 역치가 높아져서 웬만한 자극보다 더 강렬한 자극에서 흥분을 느끼게 되어 버린 우리 아이들의 생활을 반영한다. 경쟁적이고 스트레스가 많은 요즈음, 일과 놀이가 균형잡힌 생활,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생활이 성인이나 아이들 모두에게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만큼 마냥 어리지도 않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좌절과 해결되지 않은 부정적 감정을 기절놀이와 같은 위험한 활동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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