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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NH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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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중학교 3학년생의 학부모로서 김포외고의 문제유출 사건을 유심히 보다가 내가 사회부 기자를 하던 1990년에 터졌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학원가 주변을 탐문하면서 쏘다녔거나 재수가 좋으면 제보를 받을 수 있었을 테다. 이번 사건은 김포외고 낙방생 두 사람이 밝혀냈다. 90년이었으면 두 사람은 익명의 제보자로 남았을 것이고 폭로의 영광은 제보받은 기자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때는 독자 전화만 잘 받아도 특종을 건질 수 있는 시대였다. 반대로 독자는 언론을 통하지 않으면 진실을 밝힐 기회가 없었다. 지금은 독자 스스로 정보를 캐고 모으고 뿌릴 수 있는 수단이 있다. 두 사람은 ‘김포외고 일반전형 문제유출 사건해명 시위’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 만드는 데 10분도 안 걸린다. 이 카페가 검색 결과에 노출되면서 알려졌고 관련자들의 증언이 들어오면서 일순 진실을 구하는 사람들의 구심점이 됐다. 동시에 정보 전파의 원심운동이 시작됐다. 학교 쪽에서 부인하고 경찰이 수사결과를 내놓기까지 2주일 동안 이 카페는 어느 언론사보다 더 중요한 정보의 발전소로 기능했다. 중 3짜리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는 하기엔 두 사람에게는 비범한 면모가 엿보인다. 카페는 네이버에 개설했지만, 해명을 요구하는 1천명 서명운동은 다음의 아고라에서 벌였고, 싸이월드의 광장에 글을 올리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3대 포털 서비스를 필요에 따라 백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더 고개를 끄덕인 것은 이용자들이 법적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며 수정을 요청한 공지사항이다. * 학원 이름을 직접 또는 일부를 밝힌 경우 → ○○동 ○학원이라고, 학원 이름은 영어이니셜로 부탁드립니다. * 확인되지 않은 글을 사실인 양 말하는 경우 →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라는 설도 있다라고 꼭 말씀을 해주세요. * 여러 웹페이지에서 가져온 증언이라고 추측되는 글을 복사해 올리신 경우 → 어떤 곳에서 가져오셨는지, 어떤 닉네임 분의 글인지 그리고 자신이 올린 게 아니라는 걸 꼭 기록해 주세요.인터넷을 통한 정보전파의 잠재적 위험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용자들이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전파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지만 다른 한편으로 숨어서 함부로 쓴 글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이것은 언론조차도 되새겨볼 대목이다. 미확인의 정보를 사실인 양 보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기사를 베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 사람은 원래 번화가에서의 시위를 계획하고 동조자를 구했으나 시위는 이뤄지지 않았다. 48시간 전에 집회를 신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절차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운영진의 미숙으로 시위가 무산된 점을 깊이 사과한다고 했다. 시위 안 해도 그들의 뜻은 입시부정 폭로와 재시험 결정으로 결실을 맺었지만 깨끗이 사과하는 자세에서 미숙함보다는 신선한 정직이 느껴진다. 카페 매니저를 맡은 ‘진실’은 재시험 결정이 나자 기뻐하기 앞서 합격이 취소된 자식을 둔 학부모들이 합격증을 들고 우는 것을 보고 “정말 제가 죄송스러워요. 상처 많이 받으셨을 텐데”라고 썼다. 이 글을 읽으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 카페에는 인터뷰를 희망하는 방송사와 언론사의 글들이 줄줄이 남겨져 있다. 과거 같으면 익명의 제보자로 남았을 두 사람이 지금은 언론사를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정보 통제권이 미디어에서 이용자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용자는 정보를 스스로 조직하고 통제할 능력을 갖게 됐다. 다만 그 정보가 진실에 기초했을 때라는 점, 간과해서는 안 된다. 홍은택/NH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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