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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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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님 귀하.먼저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공개편지를 보내는 점 양해를 구합니다. 이 전무는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임은 물론, 삼성전자의 ‘최고 고객책임자’(Chief Customer Officer)이기도 하니 ‘고객’의 쓴소리를 들을 자세가 되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먼저 현재 진행 중인 삼성에 대한 수사에 대하여 이 전무는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임원의 ‘충성도’를 높이고, 이들에 대한 더 철저한 ‘관리’체계를 수립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지요? 내부 단속과 법적 대응을 철저히 하여 수사와 재판을 무사히 넘기려고 부심하고 있는지요?
이 전무는 게이오, 하버드 등 외국의 명문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왜 윤리경영과 준법경영이 필수적인지 배웠으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세계 초일류기업을 자처하는 삼성에서 비자금 조성과 돈상자 로비라는 후진적 행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회사 내에 불법 실태가 있다면 솔직히 고백하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는 것이 어떨는지요? 과거 ‘엑스파일’ 사건에도 불구하고 삼성 핵심부는 무사했기에 삼성은 더 오만해졌던 것은 아닐까요? 순진한 기대일지 모르나, 이제 털 것은 털고 벌 받을 것은 받은 뒤 새 출발을 하길 바랍니다.
다음으로 최근 사태의 뿌리인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초저가 발행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에버랜드의 임원들이 모든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았는데, 검찰에 포진한 ‘삼성 장학생’들의 덕인지는 몰라도 이 전무와 부친은 수사도 받지 않았지요. 이 전환사채 초저가 발행으로 이 전무는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주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식의 편법·불법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신의 기업을 자식에게 넘겨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나는 기업주의 자식도 기업의 경영권을 이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삼성이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삼성의 경영권이 누구에게 가느냐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삼성에서 이 전무 일가의 지분은 1%도 안 되며, 이 전무 일가는 시민들의 예탁금이 맡겨져 있는 금융사를 그룹 지배의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전무는 벤처 열풍이 일던 2000년 당시 ‘e삼성’을 만들었지만 큰 손실이 생기자 일년을 못 넘기고 손을 뗐고, 이후 다른 삼성 계열사가 큰 손해를 감수하고 그 주식을 인수한 것으로 압니다. 이 전무가 ‘시시오’가 된 후 해외 유수기업의 책임자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것이 경영능력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지요.
이런 이유에서 나는 이 전무의 삼성 경영권 승계에 마냥 박수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워런 버핏의 말을 빌리자면, “지난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장남들을 2020년 올림픽 대표선수로 뽑는 것과 같은 끔찍한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요. 회사 경영권의 귀속이 생물학적 근거로 결정 나서는 안 됩니다. 이 전무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당당하게 선포하려면, 삼성을 이끌 탁월한 경영능력이 있음을 입증하길 바랍니다. 그러지 못하면 대주주로서 이익배당을 받는 데 그쳐야 합니다. 그 배당액만도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 전무가 이 편지를 접하게 될지 의문입니다. 그러나 ‘삼성왕국’ 안에 진정한 ‘충신’이 있다면, 나의 편지가 전달될 것입니다. 그때 이 전무가 나의 까칠한 비판의 취지를 한번쯤은 숙고해볼 것을 기대합니다.
조국/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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