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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06 18:56 수정 : 2007.12.06 18:56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세상읽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직하라는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랐다. 더욱이 공적인 영역에서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무엇보다 최선이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사회는 그동안 대중에게 공개된 것과는 거리가 먼 다양한 부정행위에 대한 폭로, 뒤이은 당사자들의 해명과 반박으로 시끄럽다.

최근 경영권의 변칙 상속을 위해 10여년에 걸쳐 계열사의 전환사채를 싸게 구입한 후, 계열사들을 동원해 비싸게 파는 등의 방식으로 기업의 주식을 매각하는가 하면, 대규모 비자금을 조성하느라 차명계좌를 만들어 관리한 의혹 등이 폭로되었다. 정보가 널리 균등하게 공유되며, 모든 일을 공개적으로 정직하게, 합리적인 규칙을 따라 행하는 것을 투명성의 개념이라 한다면, 이는 투명함과 거리가 먼 부정 사례다. 그런데 조직 안에 존재하던 묵인된 비밀을 폭로하게 되는 심리는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서로 비밀을 주고받으면서 상대와 가까워질 수 있다. 또 그 어떤 행위를 같이 하면서 같은 팀이라는 응집력을 더욱 강하게 가질 수 있다. 실제로 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관련된 조직원들의 결속을 강화시킬 수 있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커다란 조직체 안에서 부정이 행해지고, 또 그것이 빈번할 때는 모든 구성원이 그것을 끝까지 따르고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조직 차원에서 행해지는 부정은, 그 행위가 다른 사람에 의해 폭로될 경우 관련자들이 커다란 정서적·사회적 부담을 짊어질 수 있는 불확실한 모험 상황이다. 관련자로서 자신에게 집중될 수 있는 사회적 비난의 부담을 덜고자 먼저 조직의 부정행위를 폭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안전한 공범이나,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 ‘죄수의 딜레마’ 실험 연구 결과, 붙잡히더라도 절대 자백하지 않기로 굳게 약속한 가와 나 두 범죄자가 체포되어 각기 심문을 받게 된다. 이들의 범죄에 대해 검사는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는 상태로, 오로지 범죄자의 자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둘을 다른 방에 두고 검사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만약 둘 다 자백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한다면 증거가 없으므로 1년형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어느 한 명만 자백하면 자백한 자는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반면, 자백하지 않은 자는 10년형을 받게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이 모두 자백하게 되는 경우는 각기 5년형을 받는다.” 범죄자 처지에서, 두 사람 모두 묵비권을 행사하게 되면 1년형으로 가장 유리한 선택이다. 그러나 나는 자백하지 않는데 상대편이 자백한다고 하면, 자신은 10년형을 받게 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결국 검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각기 다른 방에 있는 범죄자들한테서 자백을 얻어낼 수 있다. 곧 비밀을 굳게 맹세하고 같이 범죄를 저질렀지만, 결국 서로 신뢰 못하고 비밀을 털어 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둘 사이의 비밀 공유도 이렇듯 어려운데 하물며 여럿이 개입된 조직의 비밀은 얼마나 쉽게 노출되겠는가?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정보와 절차가 액면 그대로, 사실 그대로 공개되고 진행돼야 한다. 비밀은 언제든 표면에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작은 파장부터 극단적으로는 전체의 파멸을 부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명시적·공식적 규범은 합리성과 투명성을 추구하면서도 암묵적·비공식적 행동은 여전히 비합리성과 불투명을 벗어나지 못할 때 사회 전반 불신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우리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조직일수록 이런 책임의식을 더 분명하게 가져야 할 것이다.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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