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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09 18:45 수정 : 2007.12.09 18:45

나희덕/시인·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세상읽기

몇 달 전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책따세)로부터 저작권 공개운동에 참여해 달라는 권유를 받고 저작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전까지 나는 저작권이란 이따끔 들어오는 인세 수입이나 재수록료 정도로 여기고 있었는데, 책따세의 취지문은 개인의 저술이 지적인 사유재산권인 동시에 일정 부분 사회적 공유자산임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저작권 일부를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은 ‘상품’으로서의 저작물 개념을 넘어 새로운 문화적 ‘소통’을 모색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저자 1저작권 공개운동’은 그러한 전제에 동의하는 저자와 출판사가 저서 중 한 권의 전송권을 내어줌으로써 경제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소외된 학생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비영리적 독서운동이다. 물론 저자나 출판사의 입장에서 저작권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망설임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 살 돈이 넉넉지 않았던 청소년 시절 나를 문학으로 이끌어준 것이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들이었다는 걸 떠올리면서 저작권 공개에 흔쾌히 동의했다. 당장은 판매량이 줄더라도 책을 읽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독서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저작권 증대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하지만 이 운동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출판계 일부에서는 문제의 초점을 단체들의 이해관계와 마케팅의 측면에만 두고 저작권 공개가 가져올 파장과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서 해당 단체가 추천도서 목록을 비롯한 영향력을 이용해 저작권과 출판권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학교 도서관의 한계를 극복하고 제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독서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헌신해 온 교사들의 노력과 운동의 취지를 왜곡하는 것일 뿐 아니라 실제 사실과도 다르다.

심지어 참여한 작가들을 향해 “가장 시장성이 없는 책 한 권을 못 이기는 척 내놓는 ‘아량’을 베풀었다”고 표현한 것도 보았다. 이는 저작권 공개운동의 취지에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저자들의 선의마저 모독하는 말이다. 나의 경우만 해도, 공개할 책을 선택할 때 판매량보다는 주독자층인 청소년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무엇일까를 먼저 고려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책은 비교적 평이한 문체로 교육현장의 체험을 담은 첫 시집이었다. 그 시집은 내가 쓴 책들 중에서 가장 안 팔리는 책이 아니라 중간 이상의 판매량을 줄곧 유지해온 책이다.

저자의 입장에서 나는 저작권 공개운동을 저작권을 ‘포기’하라는 압력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저작권 ‘행사’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쓴 책에 대한 권리는 단순히 판매와 유통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거두어들이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헌혈이나 재산을 기부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저작물을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방식 중 하나다.

따라서 저작권 공개운동을 단순히 저작권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발상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열린 상상력으로 문화적 지도를 만들어가려는 시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러 논란과 반대를 겪으며 개정된 저작권법이 12월부터 효력이 발생되기 시작했다. 저작권법의 논의에서도 출판과 유통을 둘러싼 여러 주체들의 밥그릇 싸움을 넘어 저작권에 대한 좀더 성숙한 사회적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나희덕/시인·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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