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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13 18:53 수정 : 2007.12.14 17:49

배병삼/영산대 교수

세상읽기

우리에게 ‘관포지교’의 고사로 익숙한 관중은 주군을 배신하고 그 원수를 도왔던 사람이다. 공자는 관중을 “문명을 보전한 영웅”으로 칭찬하지만, 제자 자로는 배신자로 규정한다.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한 약속을 어겼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로의 생각을 이은 것이 일본 사무라이들이다. 이들은 주군의 정체를 따지지 않았다. 그저 주군이 명한 대로 목숨을 걸고 일을 저지를 뿐이었다. 사무라이는 그걸 ‘의리’라고 믿었다. (와타나베 히로시 도쿄대 교수는 이걸 “개의 윤리”라고 평한 바 있다.)

공자의 생각은 자로와 달랐다. 이른바 ‘관중의 배신’이란 고작 사소한 약속 ‘량’(諒)에 대한 것일 뿐, 도리어 참된 약속 ‘신’(信)을 실현한 자가 관중이라는 것. 공자는 사람(조직)에 대한 복종은 ‘사소한 약속’이요, 공동체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참된 약속’이라고 보았다. 이에 공자는, 군자란 “참된 약속은 굳게 지키되 사소한 약속에는 휘둘리지 않는 존재”(貞而不諒)라고 규정한다. 이 생각을 이은 것이 조선의 선비였다. 이들은 군주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상소문을 올렸고, 의리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면 제 목을 칠 도끼를 들고서 광화문 앞에서 농성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무엇이 올바른 의리인가’라는 질문은 오랜 세월 동아시아의 담론 주제였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일본식 사무라이와 조선식 선비는 똑같이 사(士)로 표기한다. 다만 선비가 공동체를 위해 몸을 바쳐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던 반면, 사무라이는 조직을 위해 충성해야 한다고 믿었던 점에서 달랐다. 결국 사무라이는 주군에게 몸을 바쳐 봉토를 얻었지만 (그래서 또 ‘개’라는 불명예를 얻었지만) 선비는 공동체를 위해 애쓰다가 죽어, 남긴 재산은 없었어도 명예를 얻었던 터였다. 이 전통은, 잃어버린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 안중근을 의로운 선비, 곧 ‘의사’로 기리는 데까지 닿는다. 그렇다면 ‘사’ 앞에는 딱 두 길이 있을 뿐이다. 조직의 의리에 몸 바치는 도구적인 기사(技士)의 길과 공동체의 의리에 투신하는 선비의 길이다.

근래 김용철 변호사의 처신을 두고서도 시비가 나뉜다. 한쪽에선 그걸 정의로운 행동으로 평가하고, 또 한쪽은 조직에 대한 배신으로 흘겨본다. 그저께 자신을 두고 “삼성에 대해 의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자평했다니, 조직을 배신한 걸 제 스스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힘들고 아팠다는 뜻도 되리라. 이어서 또 “나같이 의리 없는 사람이 한두 명만 더 나와도 덜 힘들 것”이라고도 했다니, 의리가 고작 뒷골목 깡패들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투신, 곧 공자식 ‘대의’를 뜻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도 하다.

변호사란 무엇인가. 고객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기사를 이름인가, 아니면 대의를 변별하고 보호하는 선비를 이름인가. 사익에 몰두할수록 공익이 증진된다는 논리 위에 선 이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웬 생뚱맞은 질문일까 싶지만, 이 땅은 또 나름의 고유한 철학 위에 서 있는 곳이다. 오랜 세월 우리는 “제 이름에 합당하게 사는 길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명분론에 생사를 걸어왔던 터였다. 그렇다면 변호사의 끄트머리 ‘사’가 안중근 의사의 ‘사’와 같은 의미라는 점을 환기하는 것이 또 주제넘은 짓만은 아니리라.

곧 제도화된다는 로스쿨이 고작 법 기술자인 율사를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의를 수호할 참된 변호사를 기르는 학교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이 대목에서다. 또 변호사를 의뢰인과의 작은 약속(諒)에 충실한 기술자로 머물게 둘 것인지, 아니면 사회정의라는 큰 약속(信)의 수호자로 격려할 것인지도 지금 ‘김용철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 눈길에 달려 있다.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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