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18 19:15
수정 : 2007.12.18 19:48
|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세상읽기
이번 대선 정국은 ‘대세론’이 주도해왔다. 수많은 이들이 그것에 눌려 투표 의지마저 상실할 정도였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냉철하게 판단해보자. 과연 그 대세론은 극복 불가능한 것인가? 모름지기 대세론이 현실이 되는 것은 우선 내가 그리 믿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대세는 오늘 나에 의해 결정된다는 희망과 소명의식으로 투표장에 나간다면 대세론이 설 자리는 없다.
따져보면 그동안의 대세론은 왜곡된 허구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특정 후보 대세론은 올 대선 과정에서 유난히도 극성스러웠던 여론조사에 의해 ‘제조’된 측면이 강하다. 그 많던 여론조사는 대부분 (정책 선호가 아닌) 인물 선호에 관한 것들이었다. 정당정치와 정책 대결의 부재 상황에서 시민들은 그저 개별 후보의 이미지나 상징성 정도에 근거하여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같이 허망한 인기 측정마저도 제대로 된 거라고 보긴 어렵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응답률은 15%에서 20% 사이에 머물렀다. 100명 중 고작 15명이나 20명이 답해주는 상황에서 짧은 시간 내에 응답자 수를 일정 정도로 채우기 위해 계속 다른 전화번호를 눌러댔을 터이니 그 신뢰성이란 형편없는 것이다. 특정 후보에 대한 선호가 이미 분명하거나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사람들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는 편향 조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대략 80%에서 85%에 달하는 미응답층의 상당수는 필경 결정을 유보한 사람들이었을 게다. 그들의 최후 선택은 오직 오늘의 투표를 통해서만이 확인될 수 있다. 더구나 최종 여론조사 이후에 ‘비비케이(BBK) 동영상’ 공개 등 인기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새로운 변수들마저 등장하지 않았는가. 여론조사의 덫에 빠지지 말고 그간의 대세론으로부터 자유롭게 투표해야 할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 아침 각 후보의 도덕성과 자질 등을 다시금 면밀히 검증해보는 나만의 차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보수 대세론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심지어 보수 양당체제로 가리라는 낙관론(혹은 비관론)을 펼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국민 이념 성향을 분석한 여러 조사기관들은 수년간 거의 동일한 결과를 발표해왔다. 보수, 중도, 진보로 구분할 경우 국민 이념 분포는 대체로 각각 30%, 35%, 35% 정도라는 것이다. 7할 정도의 국민들이 자신을 진보 혹은 중도라고 생각하는 나라에서 보수 대세론을 들먹인다는 것은 차라리 희극적이라 할 수 있다.
진보를 표방한 두 정권을 선택해준 대다수 국민들의 바람은 지금도 변함없다. 진보하는 역사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산업화에 이어 절차적 의미의 민주화를 어느 정도 이루었다면 이제 실질적 의미의 민주화를 달성해보자는 바람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을 보수 대세론으로 연결해선 곤란하다. 노무현 정부에 실망하고 반감을 갖게 된 것은 그 정부가 진보를 실천 못했기 때문이지 그것을 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대다수는 여전히 사회양극화나 비정규직 증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의 진보를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선택법은 분명하다. 역사의 진보에 기여할 최선의 후보가 없다면 차선을,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최악은 피하는 합리적 선택을 해야 한다.
다시 한번 짚어보자. 진정한 대세는 누가 정하는가? 바로 나다. 그리고 오늘이다. 내가 오늘 바라는 것은 역사와 민주주의의 진보다. 그렇다면 과거와 실망에 포획되어 미래와 희망을 포기해선 안 된다. 오직 미래를 바라보고 스스로가 희망이 되어 꾸준히 진보할 일이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