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20 19:00
수정 : 2007.12.2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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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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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모든 패배는 억울한 법이다. 특히 이번 대선은 ‘왼쪽’의 모든 이들에게 절통함을 남겼다. 국민은 압도적으로 오른쪽의 손을 들어주고 왼쪽에겐 무참한 회초리를 내렸다. 하지만 선거에 이겼다고 협잡의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으며, 졌다고 해서 원칙과 대의까지 패배한 것은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노동당을 이끌었던 아서 콜웰은 “거짓으로 승리하는 것보다 원칙을 지키는 패배가 더 아름답다”고 했다. 민주·개혁·진보파는 역사적 공헌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바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말을 비교적 자유스럽게 발설할 수 있는 열린 사회환경을 조성했다. 그런 뜻에서 패배주의에 빠질 이유도 여유도 없다. 역사는 진보하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단, 이번 패배로부터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지금부터 대통령 당선자가 전광석화와 같이 패러다임 전환공세로 여론의 혼을 빼놓는 동안 이쪽에서 책임론 공방으로 밤낮을 지새우고 기상천외한 ‘해석 공학’을 내놓으며 특검에만 목을 맨다면 선거 패배보다 더 암울한 전망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는 ‘왼쪽’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나?
첫째, 민주주의는 한쪽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교훈을 주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일반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거의 모든 정책대결과 자원경쟁이 이루어지는 정치공동체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정치의 모든 차원을 진보와 보수라는 잣대로만 나누는 것이 지혜로운가 하는 점을 고민해야만 하겠다. 경제나 복지처럼 진보성이 필요한 영역이 있고, 이념보다는 공익·공동선·중립성·직업윤리와 같은 덕목이 더 필요한 영역도 있음을 인정할 때가 됐다. 특검 검사를 선정하는 문제를 상기해 보라.
둘째, ‘확신의 정치’가 아닌 ‘책임의 정치’를 추구해야 함을 가르쳤다. 동기가 좋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정책은 좋았는데 정치를 못했다는 식의 궤변은 이런 인식을 반영한다. 유권자는 현실적이고 이기적이다. 이것을 잊고 좋은 의도만 강조하면서 결과를 도외시하는 정치세력은 버림받기 마련이다. 또한 국민은 외양과 상징성을 무시하고 ‘본질’만을 내세우면서 거칠고 무례한 언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집단에 넌더리를 낸다는 점을 깨우쳐 주었다.
셋째, 다양한 가치와 노선의 분화를 인정해야 함을 가르쳤다. 문국현 후보는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지구화 현실을 인정하되 투명하고 ‘교화’된 자유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새로운 왼쪽 세력을 대변하였고, 이회창 후보는 돈과 성공이 아니라 법과 질서를 중시하는 새로운 오른쪽 세력을 결집시켰다. 후보 단일화의 당위성을 떠나 변화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일화를 윽박지르기까지 하던 일각의 고압적인 행동은 이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공룡들인지를 보여 주었다. 그런 면에서 국민은 민주·개혁·진보 진영의 세대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은 민주·개혁·진보파가 사회의 흐름 바깥에 있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깨우쳐 주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가 지적하듯 “현존하는 질서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도 그 질서를 수호하려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사회의 산물이자 반영일 뿐이다.” 사회개혁 세력도 의식의 선진성과는 별개로 그 사회의 습속과 행동양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국민의 수준 탓만 할 게 아니라 민주·개혁·진보파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냉정히 자성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왼쪽’은 그 동안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해 왔지만, 이제는 세상을 똑바로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환골탈태하려는 쇄신의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미래는 의외로 빨리 구름 밖으로 고개를 내밀 수도 있다.
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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