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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27 19:04 수정 : 2007.12.27 19:04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세상읽기

새해에는 새 정부가 들어선다. 또 한 번의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게 된다. 현재 우리 사회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교육문제이며, 새 정부가 벌일 행정부 혁신의 뼈대에 해당하는 정책안으로 교육부 해체 문제가 제시되기도 했다. 현행 교육제도와, 교육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의식은 분명히 개선될 필요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 사회 학부모의 교육열은 실로 엄청나다. 한국은 그 어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보다도 높은, 국내총생산(GDP)의 7%를 교육에 쓰고 있으며, 여전히 학력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어릴 때부터 오로지 한 가지 목표,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만을 위해 매진하며, 자녀의 성적은 곧 부모의 자존심의 근거가 되는 우리 사회에서 오로지 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교육열은 자녀에게 엄청난 학업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200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를 보면, 12∼18살 청소년 8633명이 응답한 스트레스 원인 1, 2순위는 바로 학업문제(67%)와 진로문제(13.8%)였다. 학업과 성적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만 평가되는 풍토에서, 어린 아동과 청소년들은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심리학 실험에서, 스트레스는 학습과 기억 수행을 결정적으로 저해하는 요소로 나타난다. 한 실험에서 쥐를 물이 채워진 미로에서 헤엄쳐 빠져나오도록 학습을 시켰다. 보통의 쥐는 몇 번 학습을 한 후 미로 찾기를 시키면 장소에 대한 기억이 저장돼 있는 해마가 활성화되고 수월하게 헤엄쳐 나오게 된다. 그러나 실험 전, 물에 아주 약한 전기를 흘려 스트레스를 받게 한 쥐들은 매번 헤엄쳐 나오지 못하고 길을 찾지 못했다. 또 이때 뇌 부위의 활동을 관찰해 보니 보통 쥐와 달리 해마가 거의 활성화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해마의 활성화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성적순으로 능력과 인생을 서열화시켜 버리는 교육제도, 과열된 교육열, 이에 따른 학업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전기충격을 받은 실험쥐처럼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을 허우적거리게만 할 뿐이다.

특히 스트레스가 장기화될 때 해마의 기능은 그만큼 더욱 손상될 수 있다. 동물 연구뿐 아니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1년 이상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뇌활동을 측정한 결과 스트레스를 받은 기간이 길면 길수록 해마의 용적이 줄어들었다. 또 해마 부위 신경세포에서 수상돌기의 수가 줄어들고 길이도 상대적으로 짧아졌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것은 학습과 기억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스트레스는 성인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스스로 적절히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어렵고 주변에서 그 증상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다. 서열 위주 교육제도 아래서 성적을 기준으로 대다수의 학생들이 교육 현장에서 소외되고, 성적이 높든 낮든 나름의 스트레스를 받는 한 이러한 문제는 빈번할 수밖에 없다. 물 안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괴로워하는 스트레스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거기서 빠져 나오기만을 팔짱 끼고 보고 있는 우리 교육의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자. 기억과 학습을 어렵게 만들고는 오히려 왜 기억과 학습을 제대로 못하는지 다그치는 우리 교육의 모순을 이젠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이다. 더는 실험쥐의 피해가 없는 그런 교육의 변화와 혁신이 있길 새 정부에 기대해 본다.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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