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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1 18:02 수정 : 2008.01.01 19:27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세상읽기

현대사회에서 정의와 불의를 나눌 수 있는 하나의 독단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일한 정책도 이념과 원칙, 그리고 삶의 조건에 따라 정반대로 평가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정의는 정치가 지향해야 할 이상일 뿐 현실이 아니다. 건강한 정치적 담론을 위해 나에게 정의가 너에게는 불의가 될 수 있는 사태에 대해 언론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강자를 위한 정책이 마치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인 것처럼 포장하고 선전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정권교체를 알리는 보수언론들의 최근 보도를 보면서 시민들은 혼란에 빠지곤 한다. 마치 참여정부가 성장보다 분배를, 시장경제보다 사회복지를, 자본가나 기업보다 노동자나 소외계층을, 시민의 20%보다 80%를, 무한경쟁보다 상호인정을, 교육산업보다 참교육을, 수월성 교육보다 교육복지를, 돈보다 사람을, 한마디로 실용보다 정의를 앞세운 정치를 펼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보수언론의 주장과 달리 정의의 원칙을 잊고 어설픈 실용정치를 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원칙 없는 실용주의를 강화할 기세다.

실용주의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는 유용성이다. 실천적 유용성을 입증할 수 없는 진리와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은 관념적 허구로 치부된다. 실용주의는 어떤 것이 참이고 옳으며 아름답기 때문에 유용한 것이 아니라, 유용한 것만이 참이고 옳으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용주의자들은 어떤 것이 쓸모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원칙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 어지럽게 널려 있는 이들의 관점을 정리해 보면 아마도 ‘욕구 충족의 가능성’이 비교적 납득할 만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세계에서 모든 생명체는 생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 것을 유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지향한다. 단세포 동물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한다. 자기보존은 생명체의 가장 근본적 욕구이며 그 때문에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유용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모든 생명체에게 유용한 사태는 별로 없다. 개미에게 삶의 터전이 바퀴벌레에겐 죽음의 땅이다. 인간 세계는 더 복잡하다. 특히 현대인은 자기보존을 넘어 끝없는 성공을 욕망한다. 따라서 하나의 사건이나 정책이 누구에게 유용하고 누구에게 유해한지를 판가름하는 원칙이 서지 않으면 돈이 성공, 곧 유용성의 유일한 기준이 된다. 이처럼 원칙 없는 실용주의 사회에서는 심지어 예술조차 돈으로 계산될 수 없는 가치 때문에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교환되는 작품만이 예술이 된다.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정치인은 누구보다 실용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실용성 없는 정책은 무책임한 신념의 정치일 뿐이다. 그러나 실용정치가 책임정치가 되려면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원칙 없는 실용정치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을 위한 잔치일 뿐이다. 유산 분배의 예를 들어 보자. 정의로운 가족공동체라면 가장 열악한 조건을 가진 자녀에게 최대의 지분이 돌아가는 분배의 원칙과 방법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칙이 없다면 능력 있는 자식이 더 많은 것을 차지하는 것이 실용적이라는 주장이 판칠 것이다. 그가 재산을 더 증식해서 가난한 형제의 몫을 챙겨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이런 방식으로 성장만이 유일한 정의라고 외치는 성공 이데올로기를 유포함으로써 대중의 선택을 받았다. 이제 그는 누구를 위한 성장과 성공의 정치를 펼 것인지 말해야 한다. 보수언론은 시민들을 무지의 베일 속에 감금시키려 하지만 그들은 아직 귀머거리가 아니다. <한겨레> 1월1일치 ‘국민의식’ 조사를 보면, 대한민국에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실용사회’를 원하는 시민(32%)보다 ‘사회복지가 잘 갖춰진 정의사회’를 원하는 시민(67%)이 더 많다.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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