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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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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삼국유사>를 펼치니, 인도에서 온 배가 김해 바닷가에 막 닻을 내리고 있다. 가야국의 사신이 맞으려 하니, 인도 여성은 왕이 직접 영접하길 요구한다. 수로왕이 예물을 갖추고 예식을 차려 극진히 대접하자, 그제야 그는 자신이 허씨 성을 가진 아유타국 공주임을 밝히고 부부가 되길 허락한다. <삼국유사>를 덮으려니, 왕후는 열 명의 아들 가운데 자기 성을 이을 자식을 나눠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걸 또 왕이 허락하시니, 김씨와 허씨가 한 핏줄이라는 설화가 태어난다. 참 당당한 왕후요 또 넉넉한 임금님이라는 감상이 스친다. 문득 김해 박물관에서 본 풍요롭던 금관가야의 살림살이가 도래인의 꼿꼿한 자존심과 토착세력의 관대한 품성이 조화를 이룬 덕택이구나 싶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새 정부가 올해의 기원으로 시화연풍(時和年豊)이라는 사자성어를 들었다. “시절은 화목하고 해마다 넉넉하라”는 뜻이니, 국민통합과 경제발전의 바람을 담은 말이다. 다 좋은 말이긴 하나, 특별히 어려운 것이 화목을 이루는 일이다.
‘화’는 본시 곡식을 뜻하는 화(禾)자와 밥통 모양인 구(口)를 합친 글자라고 한다. 큰 함지박에 밥을 담아 함께 나눠먹는 모습을 형상한 것이다. 밥을 골고루 나눠먹으려면 유의할 점이 어린아이나 노인처럼 허약한 사람들과 쭈뼛거리는 손님을 앞자리에 앉히는 일이다. 장정들이 숟가락질을 독점하고 힘으로 각각의 몫을 나눠주는 것은 ‘화’가 아닌 강압이다. 그래서 ‘화이부동’이라, 윗사람이 좋다고 여기는 것을 아랫사람들에게 받아들도록 강요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 화목의 첫째 조건은 ‘사람은 다 다르다’는 이질성을 명심하는 일이다. 이질적인 것들이 어우러져 나오는 소리가 화음, 곧 화목이다. 그런데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또 그들에게 숟가락을 쥐여주는 나라라면, 저 먼 곳 사람들도 “아이는 들쳐 업고 솥은 짊어지고서” 몰려들 것이다. 이것이 매력이다. 매력이 발산되는 나라에는 해마다 풍년이 들기 마련이다. 앞으로 세계경제를 이끌 동력이 동종번식이 아니라 이질적인 요소들의 통섭에서 비롯되는 창의성이라는 전망을 고려하면, 다르고 특이한 것을 품에 안지 않고서는 생존마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저 2천년 전 수로왕은 그저 설화 속의 주인공일 수가 없다. 다른 피부색, 색다른 풍속을 품에 안을 수 있었던 그의 포용력이 있었기에, 도래인들은 쇠를 다루는 신기술과 물건을 판매하는 기술을 한껏 발휘하여 가야국의 풍요를 이룩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기에 말이다. 나아가 수로왕이 외국 출신 부인의 몫을 인정하고 자식을 나누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 몫을 독점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하는 자세에서 피어난 훈향은 오늘날까지 이르러, 김씨와 허씨가 서로 한집안으로 여기는 따스함에 닿는다. 겉은 서로 다른데도 숨어 있는 같은 점을 발견하는 안목이 화목을 자아내는 힘이다.
그러므로 ‘시화연풍’은 우리 주변의 외국 노동자, 색다른 생각 때문에 배척당하는 ‘또라이’, 제 나라에서 밀려난 망명자, 이쪽저쪽에서 모두 배척당한 변경인을 넉넉하게 수용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아! 말은 쉬워도 정작 어려운 것이 화목이다. ‘가화만사성’이라, 화목이 이뤄지기만 한다면야 어찌 가난 따위를 두려워하랴. 공자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 터인데,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나라를 경영하는 자는 경제성장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사회를 염려할 일이다. 생산이 적어도 고루 나누어 먹는다면 화목할 것이고 또 화목하면 가난을 근심하지 않으리라.”(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蓋均無貧, 和無寡)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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