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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22 19:09 수정 : 2008.01.22 19:09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세상읽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보면, 중앙 행정기관이 56곳에서 43곳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양적 축소가 질적 축소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물론 공적 담론이 없는 일방적 통보였기에 아직은 구체적 변화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인수위와 그들의 홍보지로 전락한 보수언론들은 개편안이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추구한다고 선전한다.

작은 정부론이나 최소 국가론은 사회계약론에서 시작해서 공리주의와 실용주의, 그리고 세계주의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핵심적 주장이다. 공화주의나 사회복지국 패러다임과 경쟁관계를 형성해 온 자유주의 패러다임은 행정 권력의 역할을 개인들 사이의 사적 이해관계 충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거나 타협토록 하는 매개자로 한정한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정부가 아닌 시장이 국가경제의 기획과 통제 기능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라를 유지하는 최소 조건으로서 사회적 정의와 연대성 확립이라는 정부의 의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교육·문화·노동·의료 영역에서 복지행정을 펴지 않을 때, 사회통합의 원천이 고갈됨으로써 국가가 끝없는 분쟁과 갈등에 노출되고, 이 경우 시장 자율성도 위협받는다. 더구나 하층민의 적개심이 강화되고 중산층의 지위가 불안해지면서 선거가 성공 지향적 대중들의 반사행동만을 반영할 때, 나라의 제도와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 자체가 위험에 휩싸일 수 있다. 따라서 건전한 자유주의는 시장 원칙에 충실한 경제정책과 시장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지정책의 균형을 주문한다.

이런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인수위가 제안한 정부조직은 수만 작아졌지 힘은 오히려 강해졌다. 먼저 경제 관련 부처들은 기능별로 재편성되었을 뿐 구조조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새로 신설되는 ‘기획재정부’는 경제와 재정에 관계된 주요 기능을 통합한 공룡부처가 될 전망이다. 더구나 청와대는 국가경제 운용의 지휘탑 노릇을 자임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경제를 기획·통제하는 것은 시장이 아직 미숙한 나라에서는 몰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는 실용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기획 기능은 강화하면서 규제만 완화하는 것은 ‘큰 정부, 작은 정치’의 상징이다. 진정한 의미의 작은 정부는 오히려 큰 시장을 견제하면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큰 정치로서의 복지행정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는 시민사회와 공론장, 그리고 국회를 통해 형성된 공동의 의견을 실천하는 행정조직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교육 분야에서는 시장이 아닌 사람의 논리로 복지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구조조정이 시장의 논리라면 구조개혁은 사람의 논리다. 그런데 인수위의 교육관련 조직 개편안은 철저하게 구조조정의 원칙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이 원래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과정이라면 인재는 쓸모 있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과기부와 산자부에서 연구·개발 기능을 넘겨받은 ‘교육과학부’의 정책에는 인재만 있고 교육은 없다. 시장에 유용한 기술인력과 학문만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교육산업이다.

그나마 초·중·고교 업무를 시·도교육청이 주관하게 된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대학입시 자율화를 통해 사교육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당선인과 인수위의 생각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학벌이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권력까지 독점하는 사회에서 행정조직의 구조조정과 입시정책의 성급한 변형은 오히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가중시킴으로써 교육산업에 의한 교육의 식민화를 강화할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사람의 관점에서 교육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이것이 큰 시장을 견제하는 작은 정부가 해야 할 큰 정치다.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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