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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24 19:55 수정 : 2008.01.24 19:55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세상읽기

“용을 그리기는 쉬워도, 소 그리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용을 본 사람은 없으니 아무렇게 그려놔도 시비하는 이가 드문 반면, 소는 누구나 잘 아는 동물이니 잘 그려도 옳은 대접을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곧 비근하고 평범한 일일수록 제대로 해내기 힘든다는 말이다. 막상 평범한 부모짓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나이가 되고 보니 ‘소 그리기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낀다. 또 첫눈에 확 띄는 별난짓 치고 오래 가는 걸 못 봤으니 풍경처럼 뒤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평범함이 특별한 성취보다 더 나아 보인다.

강의도 그렇다. 특강이나 강연은 말 그대로 강사의 ‘특별한’ 경험을 우스개 섞어가며 제공하면 그만이지만 강의는 학생들이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끝나는 일이다. 강의는 학교마다 선생마다 다 하는 일이지만 학생들에게 지식을 제대로 전달하고 또 알게 만들기란 정녕 어렵다. “훈장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는 옛말이 선생 노릇의 어려움을 실감나게 그렸구나 싶어 무릎을 칠 때가 많은 것이다.

연전 아나운서 손석희씨가 대학교수로 첫발을 디디면서 이제부터 “평범한 교수”로 알아달라고 했다는 기사를 봤을 때 입가가 실쭉했던 까닭도 평범함이 품고 있는 힘겨움이 그 속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큐레이터 신정아씨가 변양균 실장과의 관계를 변명하는 중에 자기를 “35살의 평범한 여교수”로 소개한 글에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다 겸사로 이 말을 쓴 듯하지만, 실은 평범함을 이뤄내기란, 그리고 그것을 채워가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최근엔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임기를 마치고 나서 대학으로 돌아가려는 데 대해 반발이 있었다. 그 대학 교수협의회장이 그의 복귀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 이유는 “기자실과 관련해 문제를 일으킨 주역이 바로 김 처장”이므로 “언론은 개방적이고 다양성이 존중돼야 하는데 잘못된 언론관을 가지고 있는 그가 학생을 가르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는 것. 내게는 이 소동이, 한 ‘특수한 교수’가 학문 연구와 학생 교육이라는 ‘평범한 교수짓’을 업신여긴 데서 비롯된 일로 보였다.

그간 우리 사회는 대학의 안일함에 치를 떤 터다. 외국 대학과 비교해서 등수를 매긴다든지, 논문 수로 서열을 매긴다든지, 기업체의 쓰임새에 걸맞은 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고 질타당하는 데는 자업자득인 면이 있다. 그 대책으로 대학들도 특별한 경험을 갖춘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온 세월이 제법 된다. 이 ‘특별한 교수’들이 대학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점도 분명히 있다.

다만 대학이 대학인 까닭은 지금과 다른 새로운 생각을 만들고 기르는 온상이라는 점 때문이다. 문제는 ‘새롭고 낯선 생각’은 책상 앞에서 글공부가 숙성되었을 때에야, 혹은 실험실에서 오래 발효된 다음이라야 겨우 피어난다는 점에 있다. 책상머리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주저앉은 사람만이, 또는 실험실에서 청춘을 보내는 사람만이 ‘평범한 교수’다. 평범함이란 발뒤꿈치를 곧추세워야 겨우 닿는 경지이지, 방만하게 아무데서나 발견하는 진부함을 대신해 부르는 말이 아니다. 눈에 띄지 않아 가끔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평범함이야말로 새로움을 낳는 어미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학인들이 수십 년을 공부하고서도 ‘평범한 교수’가 되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시간강사와 비정년 교수로, 번역가로, 학원가와 출판사에서 지식을 팔아 겨우 밥을 벌고 있다. 그러니 특별한 재주꾼들이 대학에 들어와 ‘평범한 교수’로 자처해 버리면, 또 특수한 기술자가 대학의 질서를 깔보면, 정작 평범한 교수를 꿈꿨지만 떠밀려나간 이들의 심정은 어쩌란 말일까.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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