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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27 21:01 수정 : 2008.01.27 21:01

홍은택/NHN 이사

세상읽기

나도 언젠가부터 인사 관련 기사에 눈길이 간다. 만나본 사람들이 하나 둘 총리나 장관 후보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기자로 일할 때는 안 그랬다. 민자당 대표로 거론되던 분의 자택 앞에서 밤새 ‘잠복’ 취재하면서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이게 국민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지?’ 했다. 지금은 물망에 오른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서 ‘어, 이분이 언제 선이 닿았지?’ ‘이 사람은 영 아닌데’라고 혼잣말을 하곤 한다.

정부 교체기에 인사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총리 후보를 놓고 지금까지 지상에 거론되었던 인사만도 본인 또는 당선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운찬 박세일 박근혜 이경숙 심대평 이원종 안병만 윤진식 김학준 손병두 이의근 한승주 한승수(존칭 생략) 등 10명이 넘는다.

이제 언론은 장관과 수석비서관 후보의 예비명단을 쏟아내고 있다. 줄잡아 100명이 넘는 이름들이 나온다. 인맥이 좋은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전화번호부를 옮겨놓은 것 같을 것이다. 인사 추측 보도는 한두 다리를 건너면 인맥으로 연결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의 관심사다. 몇 명을 아는 것을 보면 나도 그런 세계의 주변부로 진입하고 있는 듯하다.

인사 추측 보도는 물망, 유력, 내정, 발표의 네 단계로 진화한다. 대체로 ‘유력’ 단계에서부터 알아맞힌 언론사에 ‘특종’의 자격을 부여하는 편이다. 90년대에도 내가 인사에 관한 단서를 물어 오면 데스크나 편집부에서는 ‘유력’이라고 제목을 뽑아도 되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내정’으로 뽑을 수 있다면 바랄 나위가 없다. 그러나 근거가 부족하다. “내정됐다”는 것도 아니고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는 식의 기사가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걸 지상발령이라고 한다.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니다. 이웃 일본에서도 추측 보도를 빗대 ‘신문사령’이라는 말이 있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서는 계파에 따라 장관직이 오가기 때문에 한 사람의 장관 발탁이 정치역학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긴 하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를 보면 이것은 개인의 입신양명과 인맥을 따지는 한국과 일본의 사회문화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인사에 대해 추측 보도를 하는 게 거의 없다. 취재해서 얻어내야 할 공익적 가치가 적기 때문인 듯하다. 대신 발표가 나면 검증은 세게 하는 편이고 기준도 엄격하다. 93년 불법 이민자를 유모로 고용했다는 이유로 법무장관에서 탈락한 여성 변호사 존 베어드가 그 경우다. 물론 나라가 크고 다민족 국가여서 알음알음으로 연결된 우리 사회와 같지 않기 때문에 인사에 대한 관심이 적은 탓도 있을 수 있다.

인사 과잉보도는 사회적 의제를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단순화시킨다. 나는 인사 정보를 얻기 위해 기자들이 치르는 대가의 비등가성을 더 우려하는 편이다. 요즘도 거론된 인사들의 집을 찾아가 기다린다고 들었다. 낙점된 인사들은 사실을 확인해 주지 않는다. 그의 표정과 행동거지에서 ‘낙점’을 읽어내야 한다. 그렇게 보내는 하염없는 시간을 기자들의 관심이 더 필요한 의제에 썼으면 한다. 또다른 우려는 언론이 인사권자와 두어야 할 비판적 거리를 희생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가장 내밀한 정보 중 하나인 인사 정보를 알아내려고 인사권자나 그의 측근과 뭔가 주고받을 개연성이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

인사 과잉보도의 경향은 인사 정보를 특종 보도하는 언론사야말로 정보력 있다는 통념 때문이다. 며칠 뒤면 저절로 다 밝혀질 발표내용을 미리 보도하는 게 정보력일까 싶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독자가 언론에 그런 정보력을 바랄지는 의문이다. 나라면 인사에 관심이 많아도 발표 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홍은택/NH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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