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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05 21:15 수정 : 2008.02.05 21:15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세상읽기

역사 블록, 헤게모니, 속물주의, 질적 선진화를 차례대로 논급한 앞의 두 칼럼을 읽고 많은 분들이 왜 이명박 당선인 자체에 대한 심층 분석은 없냐고 물었다. 맞는 말씀들이었다. 한마디로 그가 네 가지 성공 요소로부터 어떻게 멀어지느냐에 그의 정부의 성패가 달렸다. 그것은 ‘재·언·교·학’(재벌-언론-교회-학연)으로 요약된다.

첫째, 건국 이래 최초로 사적 기업 영역에서 성공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감동적이며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더 큰 희망과 비전을 갖게 한다. 그러나 기업은 성공과 실패, 이윤과 손해가 뚜렷하며, 최고경영자의 결단과 일사불란한 집행을 통해 정치 영역의 핵심 가치인 평등·타협·민주주의와는 자주 충돌한다. 불도저, 밀어붙이기 방식이 기업에선 가능하나 정치 영역, 특히 민주주의에선 불가능한 까닭이다. 사적 영역에서의 성공 요인이 공적 영역에서는 실패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친기업 일방 정책은 자칫 효율성의 포로가 되어, 이해관계의 합리적 균형적 조정 위에서 작동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약화시켜 시장권위주의와 사회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음을 깊이 주의해야 할 것이다.

둘째, 초대 대통령 이래 가장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이다. 이 말은 단순히 당선인의 개인적 신앙심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더 넓은 두 차원을 갖는다. 최근 들어 김선일·황우석, 아프간 피랍, 신정아 사건을 포함해 우리 사회를 뒤흔든 중요한 여러 비종교, 사회, 국가적 사태에 종교의 논리·자금·조직·결정·영향이 과도하게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 과정에까지 보수적 기독교단과 뉴라이트를 포함해 종교의 직접·노골적 지지를 통해 당선되었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종교의 정치 참여가 이토록 공개적인 적은 없었다. 이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지지한 정치적 기득적 교회 목소리와 절연하고 오직 교회 본연의 건전한 비판자, 긍휼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더 낮은 데로 임하여, 교회가 영혼에 대해 그러해야 하듯, 국가는 시장·기업·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 약자들, 곤고한 자들을 위한 마지막 피난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앙심이 똑같이 깊었으나 링컨과 부시가 남긴 세상적 결과는 판이했음을 깊이 주목해야 한다.

셋째, 건국 이래 최초로 제대로 된 국내 대학 교육 배경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는 큰 자산이었으나 이제부터는 위험 요소일 수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거의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며, 그 가운데는 학벌과 학연 문제가 놓여 있다. 특히 사적 연줄의 공적 영역으로의 침투와 확산은 심각한 문제다. 문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학연에서 자유로웠던 구조적 요인이 제거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당선인의 뿌리가 닿아 있는 문민정부 시절, 특정대학 학연을 바탕으로 비공식적인 권력 심부가 만들어지면서 ‘소통령’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를 통해 공식적·민주적 결정 과정이 심대하게 왜곡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강한 결속을 자랑할수록 민주적 투명성과 소통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넷째, 주류 언론, 보수 언론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았다는 점이다. 주류 언론이 이토록 한목소리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비판 기능의 상실을 통해 정부와 언론에 두루 치명적일 수 있다. 물론 공동체와 민주주의에도 치명적이다. 출범 이후 인수위의 준비 부족과 졸속에도 주류 언론의 비판은 거의 없었다. 두려운 예비 징후가 아닐 수 없다. 외환위기 때 언론의 비판 기능이 상실되었을 때 우리는 공동체가 어떤 위기 상황에 빠져드는지를 뚜렷이 본 바 있다. 당시에 언론이 노무현 정부에 가한 공격의 4분의 1만 행사하였어도 우리 공동체가 나락에 빠지는 위기는 없었을지 모른다. 당선인, 언론, 국민 모두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다.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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