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10 20:38
수정 : 2008.02.10 20:38
|
김영환/한국인권재단 감사
|
세상읽기
최근에 신경과학자들은 동아시아인과 서양인의 뇌 활동의 차이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동아시아인들의 뇌는 사물을 그 배경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할 때, 지속적인 주의통제와 일차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전전두엽과 두정엽 부분이 활성화되었다. 서구인들의 뇌는 사물을 그 배경과 관련지어 생각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할 때 그 부분이 활성화되었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동아시아 문화는 사물이나 사건을 그것의 배경에서 분리해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서양 문화는 사물이나 사건을 그것의 배경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 따라 뇌 활동이 달라진다면, 동서양 문화 각각의 하위문화를 이루는 수많은 문화들, 예컨대 종교문화, 지역문화, 교육문화 등에 따라 뇌 활동이 달라진다는 추론도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문화라는 것이 ‘살아온 삶의 모습 전체’라고 본다면 결국 사람마다 뇌 활동이 다르다는 상식에 이르게 된다.
사람마다 뇌 활동이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이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만날 때 그 감각 행위는 뇌 속에서 어떤 신경활동의 패턴을 구축하고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구축된 신경활동의 패턴은 자극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뇌의 신경활동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사물이나 사건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두 사람 간에 완전히 공유된 지식이란 불가능하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일회적 의미들이 누적된 구조물인 우리의 뇌는 더 복잡해지고 우리는 서로 더 고립된다. 더 배울수록 더 전문화되고 남을 이해하는 데 더 서투르게 된다. 그래서 신경과학자 월터 프리먼은 ‘외로운 뇌’라는 말을 했다. ‘외로운 뇌’는 사회적으로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위험한 상태다. 이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 각자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우리 뇌 속에서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같은 것을 알 수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거의 같은 것을 공유한다. 거의. 그것은 우리가 같은 학교를 가고 이웃하여 자라고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를 얻을 때 일어난다고 월터 프리먼은 분석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중점 국정과제로 보고했다. 300이라는 숫자에는 ‘자립형 사립고’ 100개가 포함돼 있다. ‘자립형 사립고’가 100개 생길 때 예상되는 문제 중 하나는 우리 사회의 분열이 심화되는 것이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회원들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만남이 이뤄진 남녀의 ‘학력 등급’ 일치도는 0.66으로 ‘인상 등급’ 일치도 0.21과 ‘소득 등급’ 일치도 0.22에 비해 무려 세 배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학력 등급’은 ‘서울 상위권대 졸-서울 중위권대 졸-서울 하위권대 및 지방 국공립대 졸-지방 사립대 졸-전문대 및 방송통신대 졸-고졸’의 6개이다. 사람들 머릿속에 이런 관점이 인상이 좋은가 나쁜가, 소득이 높은가 낮은가보다 더 근원적으로 깔려 있어서 무의식 중에 자신과 다른 ‘부류’를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학력 등급’이 강력한 구심점이 돼 집단별 조직화가 자생하고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까지는 이들이 대체로 같은 학교 울타리에 혼재돼 있는 것이 현재의 상태다. 만약 ‘자립형 사립고’ 100개가 생긴다면 이들이 이제 고등학교 때부터 따로따로 지내야 한다.
외로운 뇌는 문화공유자를 찾게 한다. 그러나 문화공유자끼리 모여 있는 현상은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하다. 복수의 문화가 복수의 끌개로 작용하면서 도저히 통하지 않는 복수의 뇌 집단으로 사회를 갈라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환/한국인권재단 감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