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14 20:02
수정 : 2008.02.1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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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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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970년대 문순태의 소설 가운데 <징소리>(1978)가 있다. 천상 농사꾼이던 칠복이는 댐건설로 고향을 잃는다. 대처로 나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아내마저 도망쳐 버리자 실성하고 만다. 딸 하나 끼고 돌아온 고향땅은 이미 물밑에 가라앉았고 친구들은 낚시터를 꾸려 생계를 잇고 있다. 툭하면 징을 쳐 낚시를 훼방하던 칠복은 급기야 친구들에게 떠밀려 추방당한다. 그날 밤, 고향사람들의 뒤척이던 귓가에는 칠복이 치던 징소리가 다시 쟁쟁거린다.
설날 다녀온 내 고향은 실은 오래전부터 바람난 마을이 되었다. 제국주의자들이 아프리카 땅을 가르듯, 산세나 지형과 관계없이 직선으로 죽죽 그은 대로 도로가 되고 공장 터가 되고, 아파트촌이 되고 말았다. 친구들은 제 고향을 외지인들에게 팔아넘기는 뚜쟁이가 되어 여기저기 복덕방을 차렸고, 고작 그들이 던져주는 구전을 핥고 있었다. 칠복이 고향친구들처럼.
그래서일까. 나는 이번 남대문 방화사건에서 30년 전 징소리를 다시 듣는다. 600년 세월이 불길에 그냥 스러지고 마는 그 허무하고도 허전한 사태 앞에 눈에선 핏발이 섰지만, 그래서 옛날식으로 “무장공비가 저질렀다”고 해도 눈을 질끈 감고 믿어줄 참이었건만, 막상 방화범의 모습을 대하고는 맥이 탁 풀어지고 말았다. 지난 설날 세배를 드렸던 당숙들과 내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던 아저씨들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징채를 든 칠복이가 거기 서 있었다.
아! 이건 지진이라고 해야 하리라. 저 일산땅 밑에 오래 묵었던 농경의 지각판이 산업화의 새 판과 충돌하여 ‘남대문’에서 분출한 것이다. 미진은 앞서 계속 있었단다. 태산같이 믿었던 집이 수용된다는 흔들림이 있었고, 공시지가와 시세가격 사이의 충돌이 있었고, 하소연을 귓등으로 흘려 듣는 국가기관에 대한 뒤틀림이 있었다. 그러나 밑바닥 지층에는 농경적 삶의 가치와 새로운 산업화, 아니 이리저리 떠도는 유목화된 환경 사이의 충돌이 자리잡고 있다.
생명을 길러내던 땅이 속살의 값어치를 잃고 거죽만이 ‘평당 몇 만원’으로 거래되는 변화야말로 지진의 발화점이다. 땅이 거죽의 크기에 따라 값이 매겨져 팔리면, 거기 깃들여 살던 사람도 숫자로 헤아려져 팔리게 마련이다. 노인은 나름대로 집값을 헤아려 남은 장래를 도모했겠지만, 그는 고작 농경의 후예였을 뿐이다. 땅은 그의 생각만큼 힘이 없었고 그리하여 변해버린 세태에 배신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그에겐 흥정하거나 주고받을 카드가 없었다.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건설회사에 뒤통수를 맞았고 칠복이처럼 땅을 잃고는 실성하고 말았던 것일 테다. 그리하여 생명을 길러내던 농경의 추억이 분노로 변해 저 형해화된 대문을 불로 싸지른 것이리라. 문이라면서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국보니 보물이니 하면서도 실은 아무도 보살피지 않는 저 허울만의 문이 건설회사나 국가기관인 양하여 몹쓸 짓을 저지른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 사태는 저 이름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반사회적 인격장애자’가 저지른 반달리즘(반문화주의)의 소산이 아니다. 이것은 내출혈이다. 우리 속의 농경시대가 피를 철철 흘리며 울리는 징소리다. 아니 저 불은 세계화니 선진화니 하며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유목족이 되어버린, 오늘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농경의 테러다.
저 불은 우리에게 묻는다.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토지를 고작 사고파는 땅으로 환산하고, 강을 화물의 수송로로 보고, 바다는 쓰레기 투기장으로 보이고, 하늘조차 내 것과 네 것으로 찢어 선을 긋는 이 삶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질문한다. 도대체 이렇게 자연과 사람, 시간과 공간을 다 돈으로 환산하는 짓이 과연 바른 삶인가를 묻는다.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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