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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02 21:58 수정 : 2008.03.02 22:03

김영환/한국인권재단 감사

세상읽기

“‘선진 일류국가’가 우리의 목표입니다. … 이념의 시대는 갔습니다. … 이제 정치, 경제, 외교안보, 노사관계 모든 분야에서 실용의 잣대가 적용돼야 합니다.” 89돌 삼일절 대통령 기념사의 일부다. 이 구절은 취임사를 떠올리게 한다.

취임사에서도 대한민국의 목표로 ‘선진화’를 말한다.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은 ‘이념’이고, 그 목표를 실현할 방법은 ‘실용’이다.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합니다. …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 실용정신은 …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개인과 공동체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삶을 구현하는 시대정신입니다.”

대통령은 실용이라는 말에서는 다른 것과의 어우러짐을, 이념이라는 말에서는 다른 것과의 대립을 떠올리는 것 같다. 이념은 사고체계다. 정치학자 존 게링은 이념이란 사고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결합력을 강조한 말이라고 했다. 이 요소들 사이의 결합력으로 말미암아 이념은 다른 이념과는 대립하고 현실과는 동떨어지기 쉽다. 현실의 변화와 함께 발전되어 가지 못해 현실과 너무 괴리된 이념은 잠시 내려놓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정치가 이념을 내려놓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이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영국 보수당의 보수주의는 정치적 실용주의이지 이념이 아니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을 낳는 것(자연), 사람, 사람이 만든 것(국가와 시장), 각각에 대해 이념이 존재한다. 우리가 오늘날 공론의 영역에서 가장 빈번하게 부딪치는 이념의 대상은 시장이다. 정부에 의한 적극적 시장개입을 옹호하는 견해와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옹호하는 견해가 우리 사회의 양대 이념축이다.

사람은 재산과 사회망, 지능과 신체를 불공평하게 타고난다. 시장은 이러한 초기 조건의 불공평성을 교정하지 않고 그것을 전제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시장은 공평한 자원 배분이란 관점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시장에만 자원 배분을 맡겨 두었을 때 효율적 배분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뤘다. 그 과정에서 독점과 과점, 사랑과 질투 등의 현상들이 주목받았다. 이러한 현상들 중 일부라도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시장에만 자원 배분을 맡겨 두어서는 효율적인 배분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러한 현상들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이는 시장이 효율적 자원 배분에 실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평성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볼 때 시장의 한계는 뚜렷하다. ‘작은 정부, 큰 시장’ 이념은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시민의 대리인으로 정부를 구성하여 시장에 개입하게 하면 사회후생이 더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의 일반적 타당성도 증명된 바 없다. 그러므로 ‘정부에 의한 적극적 시장개입’ 이념도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시장에 관한 한, 이념은 일단 내려놓아야 한다. 시장을 작동시킬 것인지, 정부를 작동시킬 것인지, 아니면 대안적인 그 무엇을 작동시킬 것인지는 각각의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여론을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전문가들이 개별 사안에 대해 전문적 분석 없이 시장에 맡겨야 된다, 아니다 …들 습관적으로 뱉는 것을 보면 언론과 대학이 정말 거듭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삼일절 기념사를 보면서 며칠 전 취임사를 읽었을 때의 기억이 스쳤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취임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굳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김영환/한국인권재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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