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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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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자본과 지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정치 권력까지 차지하는 승자독식 사회를 선포하며 ‘2MB’ 우파 정권이 출범했다. 한 분야의 승자가 모든 분야에서 승자가 되는 것은 어떤 규범과 원칙도 없는 반문화적 야생사회의 전형적 특징이다. 아마도 야만의 물결이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뒤덮을 것만 같다.돈과 앎은 그 자체로 권력이다. 돈과 앎을 소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힘을 갖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과 지식 권력이 정치 권력과 경쟁적 긴장관계를 형성하면 그 사회는 건강하고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으로 교수라는 명예를 얻고, 여기에 어수선한 방식으로 돈까지 긁어모은 사람들이 장관까지 하는 나라는 사회적 연대성이 고갈된 후진국이다.
이명박 정부는 교수가 장악한 정권처럼 보인다. 장관들 중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수라고 일컫는 전임교원을 제외하고도 객원교수, 겸임교수, 초빙교수, 심지어 예우교수도 못 해본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총리는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 스스로가 여러 대학에서 고액과외를 한 초빙교수였다. 대학들이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나 정치인, 그리고 고위직 관료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나 갖가지 종류의 교수직을 선물함으로써 거래를 해온 결과지만, 더 큰 이유는 학문보다 권력을 사랑하는 교수가 너무 많아서다.
사람들은 교수가 반듯하고 양심적이며 학식이 빼어난 사람이길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통념은 학문의 변화된 성격을 알지 못한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학문은 우주의 궁극적 진리나 삶의 지표를 제시하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현대의 학문은 섬세하게 분화된 특수 분야의 전문 지식체계일 뿐이다. 이처럼 지나친 전문화 과정 때문에 심지어 같은 학과에서 동일 분야를 전공하는 학자들끼리도 공유할 수 있는 앎이 많지 않다. 따라서 학자란 더는 수양된 인격자나 풍부한 교양인이 아니라 어떤 특수 분야의 전문 지식인을 가리킬 뿐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 심지어 학자들조차 스스로를 모든 분야에서 일정한 권위를 갖는 전문가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학자는 모든 것을 제대로 아는 현자가 아니라 한 가지를 깊이 아는 사람이다. 더구나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별 가치가 없거나 쓸모없어 보이는 문제들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의 눈에 어리석고 어수룩하게 보이기 일쑤인 학자들은 외로움과 맞서 싸우며 지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학문적 관심과 사회의 일반적 관심 사이의 큰 차이를 견뎌낼 힘이 없는 학자는 어느 순간 학문 외적인 것을 통해 보상받으려고 발버둥칠 수밖에 없다. 이때부터 교수는 투자와 투기를 넘나드는 재테크나 권력에의 욕망이 출렁이는 정치권에 줄서기를 시작한다.
지금 이 나라에는 훌륭한 학문적 능력과 업적,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교수가 되지 못한 수많은 학자들이 있다. 그런데 학자지만 교수가 아닌 이들의 수만큼이나 교수지만 더는 학자가 아닌 사람이 많다. 물론 대학에 갇혀 있다고 학자는 아니다. 학자는 대학의 성문 안팎을 넘나들 수 있는 다양한 출입구를 만들고, 문지방을 넘나들며 이론과 실천의 경계에서 찾은 문제를 집중된 상상력으로 풀어가야 한다. 그러나 학자적 실천이 정치적 권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학자가 아니라 정치인이다.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대학의 자리를 빼앗아 오늘도 사소해 보이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는 학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적어도 대학은 정치가 아닌 학문, 즉 그 자체로 충분한 권력을 가진 학문이 중심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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