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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0 19:28 수정 : 2008.03.20 19:28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세상읽기

언제부터인가 목소리 큰 자의 막말과 독설이 힘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험한 말과 고성을,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기는 것 같다. 개인간의 대화는 말할 것도 없고, 공적인 자리에서도 오히려 더욱 강도 높은 막말이 오간다.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난장판 국회, 비난과 야유, 즉흥적인 말과 자극적인 자막으로 얼룩진 방송의 소위 ‘막말 마케팅’ …. 가히 막말의 전성시대라 할 만 하다.

최근 일련의 인사청문회에서도 고성과 막말은 어김없이 등장했지만, 목소리를 높인 만큼의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상대의 과실이 컸음에도 예기치 않은 동정심마저 불러일으켰다. 부드럽고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오히려 더 매서운 질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독설이 친근함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이고, 독설에는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는 순기능도 있지만 이보다는 역기능이 훨씬 크다.

막말은 듣는 상대에게 공격성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사람들에게 욕설을 들려주면 뇌의 변연계 부분이 활성화된다. 이 부위는 먹기, 마시기, 성 활동, 불안, 공격성 등과 같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감정에 관여하고 기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욕설을 비롯한 막말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을 자극하여, 듣는 순간 당사자의 이성은 마비되고 감정에 휘둘리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화를 내며 대응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독설과 막말은 서로 자극시키며 분노와 폭력의 악순환을 만든다.

또 막말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욕설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 감사 표시와 같은 긍정적인 단어, 그리고 중립적인 단어 목록을 주고 외우게 하였다. 48시간 뒤 단어 기억률을 조사한 결과 참여자들은 부정적 단어를 훨씬 더 오래 기억했다. 막말을 들을 때 활성화되는 변연계는 기억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말과 독설을 들었을 때 가슴에 남는 상처는 여간해서는 지워지지 않는다.

막말은 막연히 감정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신체 구석구석에 독성을 퍼뜨린다. 한 실험에서 사람들이 말할 때 나오는 미세한 타액 파편들을 모아서 냉각시킨 다음 일종의 침전물을 만들었다. 평상시 이 침전물은 무색이었으나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는 색깔을 띠었다. 화를 내고 있으면 갈색, 고통을 느끼거나 슬플 때에는 회색 등 다양한 색이 나타났다. 그 중에서 화를 내면서 막말을 할 때 나온 갈색 물질을 모아 실험용 흰쥐에 주사했더니 놀랍게도 그 쥐는 몇 분 만에 죽어버렸다. 극심한 분노 상태에서 상대를 상처 입히기 위해 내뱉는 말은 문자 그대로 ‘독설’인 것이다. 듣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입에 담고 있는 사람에게는 또 얼마나 치명적이겠는가?

막말과 독설에는 전염성이 있다. 서로 자극하면서 더욱 강도가 높아진다. 종국에는 우리 사회를 점차 더 공격적인 사회로 만들어 갈 것이다. 따라서 사회 각층의 막말 정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공천심사에서 막말 전력이 있는 것을 주요한 탈락기준으로 삼는다거나 ‘악성 댓글’의 바다가 되어 버린 인터넷 공간에서 ‘착한 댓글’ 달기 운동이 진행된다는 소식은, 그래서 반갑다. 한번 내뱉은 막말은 독화살이 되어 상대의 가슴에 꽂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자기를 향해 더 강력한 독을 품은 채 되돌아올지 모른다.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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