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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3 20:45 수정 : 2008.03.23 20:45

김영환/한국인권재단 감사

세상읽기

부처별 업무보고를 보면 대통령 리더십과 성과를 생각하게 만든다.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는 하루에 오가는 차량이 220대인데 사무실에 직원까지 근무하는 톨게이트가 있더라, 차라리 차량을 무료로 통과시켜주면 사무실 유지비나 직원 급여는 절약되는 것 아닌가 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 도로공사는 발칵 뒤집혔다. 차량 통행량이 가장 적은 곳도 하루 1500대 정도가 통과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야 소동은 진정됐다.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은 물량 수급을 통해 생활필수품에 해당하는 품목 50개를 집중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생활물가지수를 구성하는 품목 152개는 아는데 생필품 50개는 뭐지? 개발주의 시대도 아니고 물량 수급 관리를 어떻게 하지? 물가 관련 부서에서는 생필품 50개 안팎의 새로운 물가지수를 만들겠다고 일단 발표했다. 그 직후 청와대 대변인은 물가지수를 따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진화했다.

박형준 국회의원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는 마키아벨리스트라고 했다. ‘마키아벨리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책에는 직원들이 당신을 대할 때마다 끊임없이 당신 기준을 읽어내도록 만들어 그들이 늘 식욕이 없는 상태로 살게 만들라는 말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입버릇처럼 엉뚱한 숫자를 이야기한다. 이런 지도자는 정확한 업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숫자라는 창끝을 들이밂으로써 타인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나의 기준을 읽어내도록 만드는 마키아벨리스트 방식을 구사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이념의 대체물로 내놓는 실용주의라는 것도 마키아벨리즘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말이다.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듯 정직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대통령 후보시절 이명박의 말은 그가 마키아벨리스트임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경제 살리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수사다. 법무부는 업무보고에서 2008년도 법무부 업무 첫째 과제로 “법질서 확립을 통한 경제살리기 기반 조성의 일환으로 ‘법질서 바로세우기 운동’ 전개와 떼법 문화 청산”을 든다. 법무부는 법질서 바로세우기 운동으로 ‘초등학교·청소년의 체험위주 법교육 강화’, ‘민간 추진기구를 창설, 유관기관·언론과 연계해 범국민 캠페인을 역동적으로 전개’를 강조한다. 초등학교·청소년의 법교육 강화가 경제 살리기에 기반이 된다는 말은 초등학교·청소년 때문에 경제가 죽었다거나 경제를 10년 후에나 살리겠다는 말이 된다. 법질서 바로세우기 캠페인을 위해 기구를 만들겠다는 발상도 참 옹색하고 그렇게 해서 경제 살리기를 한다는 것도 참 엉뚱하다. 법질서 바로세우기 운동은 경제 살리기 기반 조성의 무게를 떼법 문화 청산에만 지우려니 남 보기 창피해서 급조한 말에 불과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떼법’이니 ‘정서법’이니 하는 말도 우리 사전에서 지워버립시다”라고 했다. 법무부는 떼법 문화 청산을 위해 “자신과는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각종 집회마다 참가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상습 시위꾼”을 색출, 엄단하겠다고 한다. 이해관계가 없는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처벌의 요건 중 하나인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집회에 참여하는 행동에서 나타나는 이타성은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규범의 하나다. 현 정부는 이런 이타성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적 감정의 배제와 전문성의 유지는 관료의 핵심 윤리다. 정치인이 아닌 관료가 공식적 업무보고에서 국어사전에도 없고 백과사전에도 없는 떼법을 청산하겠다고 하거나 이타성에 대한 사감을 드러내는 것은 우려스럽다. 대통령을 대할 때마다 끊임없이 대통령의 기준을 읽어내도록 길들여졌을 때 공무원의 성과는 조잡하거나 위험하다.

김영환/한국인권재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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