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08 21:20
수정 : 2008.04.0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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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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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민주주의는 선거를 먹고 자라난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만든 일등 제도 역시 선거다. 건국 이래 한국의 민주주의는 숱한 문제를 드러내 왔으나 냉전과 독재 시기에조차 한 번도 민주주의 기축제도인 선거, 복수 정당, 의회가 전면 폐쇄된 적은 없었다. 이 점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동유럽 지역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는 순간 한국의 큰 성취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민주주의의 기저제도를 유지해 온 이 점이야말로 한국이 다른 유사 국가군, 즉 식민 경험 국가들, 제3세계 나라들, 분단 국가들과 비교해 빠르게 경제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핵심 요인의 하나였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선거·정당·의회를 통하지 않고는 한 번도 임기를 연장할 수 없을 만큼 늘 의회와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 했다. 그의 정권의 종식과 4·19를 촉발시킨 것도 바로 (3·15 부정) 선거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조차 군사통치 대신 선거를 통한 대의제 정부 구성 단계를 거쳐야만 했다. 국민 직선을 통한 집권 연장이 위협받자 그는 대선 제도를 간선으로 바꾸었고,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사실상 직접 선출하였다. 그러나 선거와 정당체제, 의회 구성을 직접 좌우하려 한 박정희 체제조차 1978년 총선에서 야당에 1.1% 뒤진 득표를 기록한 1년 뒤 붕괴하고 말았다. 85년 2·12 총선은 야당의 소생과 직선제 개헌투쟁을 불러일으켜 6월 항쟁과 전두환 체제 종말로 연결되는 한국 민주화의 일대 분수령이었다. 인물의 성장 역시 선거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조봉암·신익희·김영삼·김대중·노무현 …은 모두 선거를 통해 국가 지도자로 성장한 사람들이었다. 이들과 이승만·박정희·노태우·이회창의 대결은 당대의 핵심 문제를 국가 의제로 부상시켜, 불을 뿜는 대안 경쟁을 통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요컨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 국가 의제의 해결 방안 대결, 국가 리더십의 성장은 선거를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또한 바로 그 선거로 말미암아 질적 도약을 제약받았다. 선거권이 국민 모두에게 일거에 주어졌을 때 유권자들은 ‘시민’, ‘계층’, 또는 ‘세대’ ‘성’(젠더) 정체성을 갖고 투표하기보다는 ‘국민’으로서 투표한다. 때문에 이들의 이익 표출이나 정당 결성은 어렵다. 즉 계층 정당이나 이익이 선거를 통해 출현·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선거권이 일거에 부여됨으로써 계층·연령·성별에 따른 차이와 무게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48년 모든 국민에게 일거에 투표권이 부여되어, 이는 너무도 뚜렷하였다. 국민으로서의 투표는, 국가 의제가 곧 국민 의제이고 사회 의제일 때는 괜찮았으나 계층·세대·성·지역에 따른 이해의 분화 이후에는 개혁 의제 형성, 정당체제, 민주주의의 발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제 국민으로서의 투표는 마감하자. 그리고 농민·여성·청년·실업자·중산층·노동자로서 투표하자.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노동자 밀집지역인 울산에서 노동 후보가 아닌 재벌 후보가 계속 당선되는데, 어떻게 노동과 비정규직 문제가 그들의 관점에서 해결될 수 있는지 의아해한다. 지난 대선에서 여성 리더들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당내 후보조차 되지 못하여 여성 문제의 독자적 표출은 봉쇄되었다. 실업·육아·등록금·저임 문제를 안고 있는 청년들이 투표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들의 해결을, 그것을 초래한 기성세대에게 내맡기는 셈이 된다.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는가? 오늘 우리 모두 노동·여성·중산층·시민·농민·청년·비정규직으로서 투표장으로 나아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하자.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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