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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10 21:38 수정 : 2008.04.10 21:38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세상읽기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관점과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동년배나 같은 직급에서도 그렇지만, 책임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이해는 더 많은 능력이 요구된다. 하급자들은 상급자를 보면서 ‘나는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지’를 되뇌기도 하고, 상급자들은 ‘왜 제대로 따라오지 못할까’ 하며 부하직원과 후배를 답답해하곤 한다. 나와 다른 관점, 서로 다른 처지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일까? 세살 어린이에게 앞면에는 강아지, 뒷면에는 고양이 그림이 있는 카드를 보여주고 그것을 아이에게는 강아지가, 실험자에게는 고양이가 보이도록 두 사람 사이에 반듯하게 세운다. “너는 강아지가 보이지? 그럼 내게는 무엇이 보일까?”라고 물었더니, 아이는 상대가 고양이를 보고 있다고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내가 보는 것과는 다른 것을 보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은 어릴 때 이미 발달한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성장하면서 도리어 감소하는 것 같다. 시카고대의 심리학자 케이사르는 성인 두 사람을 여러 칸으로 나눠진 장식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도록 앉혔다. 그리고 몇 가지 물건을 칸 위에 올려놓았는데, 어떤 칸은 뒷면이 뚫려 있어 물건이 두 사람 모두에게, 어떤 칸은 뒷면이 막혀 있어 한 사람에게만 보였다. 과제는 두 사람이 합심해서 가능한 빨리 물건을 옮기는 것이었다. 이때 두 사람이 어디를 보는지 눈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각기 다른 칸에 놓인 세 가지 크기의 양초 중 제일 작은 것을 옮기라는 지시가 있을 때, 사람들의 눈동자는 상대의 관점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쪽에서 보기에 작은 것이 무엇인지만을 견주는 데 집중돼 있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을 상대는 볼 수 없음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기중심적 경향이 권력을 가지게 될 때 한층 커진다는 점이다. 권한이 커지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 사람들은 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존재하게 한 ‘청중’의 존재를 더 쉽게 잊어버린다. 최근 한 실험에서, 대학생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며칠에 걸쳐서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권력’에 대한 상상을 하게 했다. 그런 다음 여러 사람들 앞에서 알파벳 글자 하나를 자기 이마에 써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빨리 알아맞히는 게임을 하게 했다. 이때 한 집단은 자연재해로 집을 잃은 마을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물품들을 나눠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상상하게 했고, 다른 한 집단은 권한 없이 물품을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상상하게 했다. 그리고 이들이 이마에 쓴 글자를 비교해봤다. 권한이 없는 경우는 다른 사람이 잘 볼 수 있게 글자의 좌우를 거꾸로 해서 쓴 반면, 자원을 공급하는 권력자로 스스로를 상상한 집단은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관점에서만 글자를 썼다. 권한을 가지는 순간 타인의 관점에 대한 이해나 고려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권한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사람들의 행동이 이처럼 달라진다면, 실제로 커다란 권한을 부여받는 경우는 어떻겠는가?

이제 18대 총선이 마무리되었다. ‘그 자리’에 도달한 이들이, ‘그 자리’에 가려고 했던 초심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구성원 하나하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처음의 결심이 유지되도록, 권력을 가진 자가 자칫 빠지기 쉬운 자기중심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부탁한다.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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