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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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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회재 이언적은 이황도 존경하던 대유학자였다. 그런 그가 은퇴하면서 사랑채를 독락당(獨樂堂)이라 이름 지었다. 독락이란 ‘홀로 즐긴다’는 뜻이다. 숨어서, 장자식으로 즐거움을 독차지하시겠다고? 그런 독락이라면 유학의 정신과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유학의 요체는 ‘함께, 더불어’에 있기 때문이다. 맹자가 여민락, 즉 ‘백성과 함께 즐김’을 왕도정치의 핵심으로 권한 것도 그래서다. 그러니 조선의 5대 유학자로 꼽히는 그가 아무리 당대정치에 마음이 앵돌아섰다 해도 노장풍으로 이름을 짓지는 않을 터였다. 하여 독락이란 말은 내내 풀리지 않은 숙제였다. <논어> 첫 구절은 잘 알려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으랴’라고 읽힌다. 둘째 구절은 ‘먼데서 벗이 찾아오니 즐겁지 않으랴’이다. 같은 길을 걷는 벗을 만난 즐거움을 말한 것이다. 셋째 구절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랴’이다. ‘남이 몰라줘도 성내지 않는다’ 함은 날 인정해준다면 더없이 좋겠으나, 정히 알아주는 이가 없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홀로 즐기며 살겠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곧 독락을 말한 것이다. 그제야 아! 하고 무릎을 쳤다. 회재는 끝까지 유학자인 터였다. 그러니 <논어> 첫 장은 즐거움으로 넘실댄다. 배움의 기쁨, 벗을 만난 즐거움 그리고 홀로 즐거워함이다. 불교와 달리 인생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공자의 주장인 셈이다. 공부란 곧 그 즐거움을 발견하고 배우는 과정일 따름이다. 그러니 “아침에 진리를 깨닫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라는 그의 말은 엄숙한 순교자적 선언이 아니라, 내 삶 속의 즐거움을 발견해서 잠시라도 웃으며 살다 죽겠노라는 경쾌발랄한 말씀인 것이었다. 새벽 1시를 훌쩍 넘었던 그저께 밤. 늦은 귀가에 목을 축이려 들른 편의점 안이 ‘파시’처럼 부산했다. 취기에 몽롱하던 눈이 번쩍 띄었다. 새 교복이 몸에 채 익지 않은 고교 1년생들이 삼각 김밥, 컵라면 등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오밤중까지 학원에 붙잡혔던 어린 청춘들이 앙가슴을 후려쳤다. 분명 피치 못해 하는 짓일 텐데, 억지로 하는 공부 속에서 배움의 기쁨이 있을 턱이 없다. 또 너를 이겨야 내가 사는 공부 가운데 참된 벗이 있을 리도 없다. 더욱이 그런 공부 속에 홀로 즐기는 그 무엇은 더더욱 있을 수가 없다. 도리어 책에 대한 증오, 글에 대한 미움, 학교에 대한 분노만이 어린 가슴들 속에 사무치게 새겨질 것이다. 그러니 학교를 졸업하기만 하면 더는 책을 읽지 않는 것이리라. 누가 즐거움이 아닌 노동으로서의 글 읽기를 계속할 것이며, 그 와중에 또 무슨 배움의 즐거움이 있을 것인가. 한밤을 낮 삼도록 강요하는 공부의 요체는 가난을 이기고 풍요롭게 살기를, 또 넉넉한 삶은 더욱 더 넉넉하기를 기대하는 데 있다. 그러나 삶이 어디 바람대로 넉넉해지기만 하던가. 도리어 지난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는 죽도록 배웠지 않았던가. 잘 살기 위한 공부의 무능성을. 한 번도 가난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부를 하지 못했던 탓에 당했던 자살과 자해, 가정의 붕괴와 가족의 이별들. 그러니 정작 우리가 우리 자식들을 아낀다면 가난을 벗어나는 방법(잘살기 위한 공부) 뿐만 아니라 가난을 버티며 살아가는 법(못사는 공부)도 가르쳐줘야 할 일이다.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평생직장은 이미 사라진 터에, 못사는 공부, 나아가 가난 속에서도 혼자 즐길 줄 아는 독락의 방법은 가르쳐야 할 일이다. 이게 진짜 자식들을 살아남게 할 공부가 아닌가?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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