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4.29 19:24
수정 : 2008.04.2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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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연세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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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국의 국가 발전은 국제질서 적응 능력에 달렸다. 대륙과 해양의 교량 지점에 있어, 주변 4강이 곧 세계 4강인 국제 위치로 말미암아 이는 숙명이었다. 그런 조건에서도 우리가 2000년 동안 국가단위로 생존하며 오늘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 ‘숙명=국제조건’에 대한 적응 지혜와 활용 능력으로부터 발원하였다. 세계를 비교할 때 한국민들은 높은 중심 의존성에도 불구하고 중심의 압력을 적절히 차단하고 중심을 활용하는 지혜를 자주 보여주었다. 중화체제에서 그들은 의식 쪽의 ‘충성’과 경제 쪽의 ‘조공’을 하는 대신 국가의 ‘안정’과 국제관계의 ‘독립’ ‘안보’를 확보하는 독특한 교환관계를 지속해 왔다. 개항 이후 국제질서를 유념할 때 한국으로서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체결은 기적적 쟁취였다.
필자는 오늘의 국제 위상에 이르기까지 한국민들이 궁구한 국제 대응 양식을 “순응과 저항”, “적응과 도전”으로 설명해 왔다. 즉 주어진 국제체제에의 적응과 순응, 그리고 그 안에서의 부단한 도전과 저항의 결합을 말한다. 특별히 민주화 이후 우리는 중위국가 성장, 냉전 해체, 남북 역전으로 한국 문제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한국의 선택이 갖는 민족·지역·국제적 파장이 결코 작지 않음을 목도해 왔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진실로 걱정스러운 것은 국내 문제보다는 국제 관계였다. 국익을 위해 미국과의 대결도 불사한 이승만·박정희의 실용주의와, 한-미 동맹의 근간을 유지하며 동아시아도 잡았던 노태우·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균형감은 갖고 있을까? 자국 국민으로부터도 외교파탄을 질타받는 부시-네오콘의, 한-미 동맹이 약화되었다는 외교수사에 말려들어 시장 개방, 무기 구매, 6자 회담, 에프티에이, 북핵 문제, 전시 작전통제권, 파병 문제에서 우리의 요구와 이익을 스스로 거둬들이지는 않을까? 대선, 취임사,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비전과 실용주의를 발견하는 데 모두 실패하였기에 대통령의 바른 접근을 위한 몇몇 비교준거를 드리고자 한다.
먼저 동맹문제다. 이순신이 왜 동아시아 국제전쟁에서 ‘동맹’ 명나라의 요구에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았는지, 대인 이순신의 긴장과 견제가 이후 조선의 운명,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300년 평화 정초에 어떤 자장을 드리웠는지 촌탁하길 바란다. 한-미 동맹 체결을 위한 이승만의 사투에 가까운 기록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중·소·북한을 끌어들이며 미국도 놓치지 않아야 했던 노태우·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고뇌를 정면·반면으로 배우길 바란다.
둘째, 집권을 위해 강력히 비판하되 집권 후에는 앞 정부 정책을 계승해 국가목표를 달성한 사례를 공부하자. 브란트와 콜, 닉슨·포드와 카터를 보라. 적과의 대화 성공과 국익 창출에 모두 성공한 독일 통일과 미-중 수교는 정당이 달랐음에도 집권 이후 동독 정책과 중국 정책에선 앞 정부의 온건노선과 업적을 계승한 콜과 카터의 결단의 산물이었다. “이제는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마오쩌둥의 비밀 대외기조를, 숱한 내정의 격변에도 지속한 등소평을 포함한 중국 지도부의 지혜는 대미 적대의 종식과 국가 도약을 이루었다. 클린턴의 모든 정책을 부정한 부시-네오콘이 세계와 중동과 미국과 한반도에 남긴 결과는 지금 어떠한가?
셋째는 세계의 변화다. 유럽, 대양주, 동아시아에서 부시-네오콘을 대변하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의 정권들은 ‘부시 이후’를 대비한 국민적 선택으로 전부 교체되었다. 대만 역시 대륙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후보가 당선되었다. 세계시간은 지금 벌써 ‘부시 이후’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부시-네오콘에 코드를 맞추면 결코 안 되는 이유다. 역사와 세계에 대한 대통령의 학습능력을 기대한다.
박명림/연세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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