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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08 21:14 수정 : 2008.05.08 21:14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세상읽기

‘스승의 날’을 앞두고 내겐 그리운 분이 있다. 편찮을 때는 옳게 찾아뵙지도 못했으면서, 돌아가시고 난 후 세월이 흐를수록 더 간절히 뵙고 싶은 스승이 있다. 권우 홍찬유 선생님.

나는 정치학 전공자다. 20년 전, 서양 사정으로 가득 찬 공부 말고 따로 우리만의 정치학도 있지 않을까 싶어, 한학을 배우려 찾아 든 것이 선생님의 문하였다.

머리숱도 없고 자그마해서 눈에 띄지 않았던 칠순의 노인. 서당 면접시험 때 한복을 위엄스럽게 차려입은 다른 선생께 예를 꼬박꼬박 차렸던 기억이 지금도 부끄럽게 내 마음가짐을 비춘다.

어렵사리 생신 날짜를 알아내 떡이라도 차릴 양이면 “조선 천지에 생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며 짐짓 역정을 내곤 하셨다.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한문을 가르쳐 얻은 돈으로 집세를 충당하고, 우리들에겐 공으로 가르친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고작 국수로 저녁을 대신하면서 세 시간을 내내 서서 가르치던 선생님. 의자에 앉은 채 졸다가도 제자들의 인사를 받으면 환하게 웃으시곤 했었다. 내 스스로 초로의 나이에 접어들고서야 노인의 몸으로 피곤에 절어 그런 줄을 알게 되었으니, 젊은 시절의 무지와 무신경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부산에서 직장을 얻고서 첫 월급으로 음식을 대접하려고 모셨던 식당. 막상 계산을 하려드니 선생님께서 먼저 값을 치르고 난 후였다. “먼 데서 나를 찾아온 사람에게 인사가 그렇지 않다”는 말씀 앞에서 또 옛 어른들의 사람 대하는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다.

돈 너머에 사람다움이 있음을, 돈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를 차리기에 적당하면 그만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시대가 변하면 복식도 바뀌고, 풍습이 변하면 결혼예식도 바뀌며, 환경이 달라지면 상례도 변한다고 하셨던 선생님. 그럼에도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것은 ‘사람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가르침이었다. 몸소 보여주신 이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고작 글자 속에서 전통을 찾고 있을 것이다.

하염없는 시간강사 생활에 지쳐 앙앙불락 눈에서 핏발이 서던 날들. 그러나 그 분이 계신 서당에서 글을 읽고 나면 차분히 마음이 가라앉고 사납게 치켜떴던 눈길도 바로 내려앉곤 했다.

남보다 뒤늦게 집을 마련했을 때, 당신 자신의 성취인 양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물 속에 아련하다. “주어진 환경에 내내 만족하며 살아라”는 뜻으로 써주신 합우완미(合又完美)라는 글귀가 평소 선생님 모습처럼 조촐하게 벽에 걸려 있다.

오늘 저녁, 그분께는 올려보지 못한 옷 선물을 받았다. 배운 것을 고작 흉내 내어 한문을 가르치는 자리. 여러 교사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인사를 듣고 또 선물도 받았던 것이다. 어쩌면 좋을까. 선생님께는 한 번도 제대로 인사드리지 못한 처지인데.

내가 학생을 꾸짖을 때 내는 말투에서 문득 나를 꾸짖던 선생님의 쉰 목소리를 느낄 적에, 또 부지불식간에 선생님의 글 읽으시던 흉내를 내고 있음을 느낄 적에 선생님이 내 곁에 계심을 안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적막한 이 한밤에 권우 선생님의 가르침을 평생을 두고 간직하리라 다짐해본다. 고전을 읽을 적에는 “한 글자도 빼놓지 말고, 한 마디 말도 섞지 말라”던 말씀. 낱낱이 글을 해석하되 함부로 뜻을 섞어 오독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힘에 겨웠던 척박한 세월을 살아내면서도 돈 너머 사람다움이 있음을 몸소 보여주고 떠난 자리. 늙어가는 인간의 몸에서도 향기가 날 수 있음을 알게 해준 분이었다. 막상 ‘선생은 많아도 스승은 없다’는 시대라서인지 더욱 선생님이 그리운 5월의 봄밤이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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