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20 19:39
수정 : 2008.05.2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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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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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국 문학과 정신의 한 표상 박경리 선생이 돌아가셨다. ‘민간 국장’에 가까운 한 거인의 죽음은 우리에게 정치 사회적 드잡이와 힘겨운 현실에서도 과연 바른 삶이란, 높은 정신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박경리 부음기사에서 <토지>를 ‘전설, 영웅서사, 대하소설’의 뜻을 갖는 단어로 소개한다. 실제 <토지>는 우리 공동체 한 시대의 전설이고, 등장 인물 하나하나의 영웅서사였다. 끊어질 듯 하다가 이어지는 수많은 삶들을 통해 장삼이사가 곧 전설이고 영웅인 진경을 때론 장쾌하게, 때론 애타게, 때론 깊은 슬픔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거대한 생명서사요 삶의 드라마였다.
박경리의 삶은 현대 한국 사회의, 한국 여성의 핵심적 ‘사회적 불행’을 극복한 영혼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존경스럽다. 질곡의 ‘가부장제’로 고통스런 출생과 성장, ‘한국전쟁’과 남편·자식의 망실, ‘독재’와 가족 투옥·옥바라지·감시의 눈길…가부장제, 전쟁, 독재가 이토록 철저하게 한 삶을 계속 옥죌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고난에도 절망하지도 직접 소리지르지도 않았다. 대신 훨씬 깊게 투쟁하였다. 내면적 인고와 승화를 통해(소설과 실제 삶 모두에서) 가부장제로부터 너른 모성성과 페미니즘으로, 전쟁과 죽임에서 생명과 휴머니즘으로, 그리고 독재와 억압에서 자유와 해방의 지경으로 나아가는 차원 높은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를 통해 순수냐 참여냐의 경계를 허물고 포괄하며, 개인과 사회에 걸친 영혼과 구원에의 비약을 보여주었다. 여류작가라는 차별적 호칭이 그에게서 비로소 사라진 것은 그 폭과 수준, 보편성 때문이었다.
그 자신 마지막 저작에서 “자유에 투철하기란 무한 극기를 요하는 것으로 아무나가 갈 수 없는 길”이나 “고통 속에서 자유를 체득하게 된다면 능동적 창조에의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스피노자, 사마천, 도스토옙스키, 프루스트, 정약용, 윤선도, 굴원, 두보의 고통을 말하며 “수동적 고통에서 능동적으로 자유를 거머잡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례로 들고 있으나 그의 삶이 곧 고통에서 자유로 나아간 변혁과정이었다. 그가 <토지>의 첫 장 제목을 ‘어둠의 발소리’로, 마지막 장을 ‘빛 속으로!’로 정한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그는 <토지>를 쓴 자신이 “누군가의 도구가 아니었을까?” 묻는다. 그 누군가는 등장인물, 역사, 사회, 독자, 미래 세대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많은 젊은 영혼들이 사회와 미래의 아름다운 도구가 되려는 꿈을 갖도록 하자. 자신의 영역에서 또다른 박경리가 되는 꿈을 갖자.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은 과거의 조건이 아니라 미래의 꿈이다. 고통을 넘은 개인적 소망들을 바람직한 공동체를 향한 비전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 꿈은 정녕 값질 것이다. 그 고통과 소망은 박경리처럼, 곧 사회와 영혼발전의 자양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취업난과 저임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러나 조금도 꿈을 잃지 말자. 상상 이상의 고통에 직면했던 위의 인물들의 인내, 연단, 성취를 떠올리자. 모든 것은 꿈을 향한 젊은 날의 준비에서 시작된다. 특히 젊은 날의 독서는 미래준비의 처음이자 끝이다. 영혼을 뒤흔드는 젊은 날의 책 한 권은 미래 10년을, 평생을 좌우한다. 지금의 1년은 미래의 10년일 수도 30년일 수도 있다. 촌음을 아껴 <토지>를 읽자, 고전을 읽자. 그리하여 문화, 정보기술(IT), 학문, 예술, 언론, 경제에서도 많은 젊은 박경리들이 나오기를 기원해본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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