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10 19:13
수정 : 2008.06.1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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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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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란이다. 국면은 이제 ‘정부’를 넘어 ‘국가’ 위기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촛불항쟁을 거치며 사태는 아주 위험한 자중지란과 리더십 침몰, 정부 대오 붕괴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 사태의 정점에 서서 다시 큰 호흡으로 객관적 원인 분석과 대안 제시를 통해 하루빨리 우리 공동체가 다시 발전하기를 간절히 소망하자.
원인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통령과 정부의 ‘반실용주의=이념주의’와 무능이 근본 원인이었다. 건국 이래 한국을 발전·개혁해 온 중심노선은 실용주의였다. 그러나 정부는 출발부터 앞선 정부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념 규정하며 실용에서 이탈하였다. 이탈과 동시에 정책선택은 너무도 제약되었고, 그 결과 가장 자신있어한 경제와 민생이 먼저 무너졌다. 스스로의 선택을 막은 이념주의의 자기족쇄였다. 국제·남북관계 역시 반미 친북으로 한-미 동맹이 파탄난 듯 규정해, 친미 반북과 한-미 동맹 복원을 외쳤다. 그러나 정치논리·국내공방이 아니라 정책논리·국제관계에서 동맹 파탄은 없었다. 6자 회담,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미군기지 이전 합의가 동맹 파탄 상태였다면 가능했을까?
동맹 복원의 실질내용(실용)이 존재하지 않자 허구의 가상이념(친미주의)을 외친 정부에 무기구매와 시장개방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자 바로 거기에서, 곧 쇠고기 시장 개방이라는 너무도 구체적인 실용영역에서조차 국민건강과 보건·식량안보·검역주권이라는 실용주의를 전면 무시한, 동맹 복원이라는 이념가치를 위한 결정적 무능과 대파국이 초래되었다. 게다가 친미를 할수록 깐깐했던 이승만 이래 노무현까지와는 달리 미국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반미로 간주하여 내부에서조차 전문성, 토론, 이의제기는 무시되었다. 역시 이념주의의 자기족쇄였다. 이는 쇠고기 문제가 단순히 이명박 정부의 시장개방 정책을 넘어 왜 대내·대외적으로 국가비전, 리더십, 능력, 정책조율, 민주주의, 국민동의 … 차원의 총체적 준비부족과 무능을 상징하는가를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협상 이후의 해결능력 부재였다. 한국에 한-미 동맹은 필수이나 대통령은 사태 이후 건국 이래 최초로 국민과 미국을 택일해야 하는 최악의 반미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국민 요구를 수용하면 한-미 관계가 틀어지고, 미국과의 협상을 준수하면 국민 저항에 직면하는, 국민과 미국을 이토록 대립시킨 대통령은 역사상 없었다.
이제 대안을 찾자.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정부의 실용주의 복원이 절실하다. 특히 실용적 삶과 생활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국민 저항을 진보-보수, 반미-친미의 이념대결 구도로 접근한다면 상황은 정부의 대응능력을 벗어나 전개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재협상이다. 현 상황에서 재협상이 필수적인 이유는 수입재개·저지·판매를 둘러싸고 예상되는 한-미 정부·업자·시민 관계의 파국이나, 항만으로부터 매장에 이르는 대충돌을 넘어, 합의를 통한 수입재개를 통해 건강한 한-미 관계를 복원하고 정부의 대내·대외 통치능력을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민주주의의 회복이다. 금번에 드러났듯 민주적 가치와 절차가 실종된 일방주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부 안과 밖에서 이견과 토론을 수용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라. 특히 대통령, 정부, 의회의 무능 및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우리 사회가 치르고 있는 막대한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대안으로서 국민주권과 안전이 걸린 중대 사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부-의회-시민사회의 정책협의·결정네트워크나 국가거버넌스를 구축하자. 직접 민주주의를 통한 민주주의의 확장과 보완으로 무능과 파국을 동시에 극복하자는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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