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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22 20:08 수정 : 2008.06.22 20:08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세상읽기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던 날, 정부는 ‘합리적으로 잘된 협상’이라며 자축했고, 미국의 축산업자들은 마치 산타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환호했다. 그러나 한 달도 못 가서 이 협상은 한, 미 양국에 커다란 손실을 안긴 사고였음이 드러났다.

한국에서는 국민 건강권을 도외시한 무책임한 정부로 말미암아 국민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고, 사고 수습을 위해 국민이 거리로 나섬으로써 사회적 손실도 만만찮게 발생하였다. 한국 소비자들의 미국 쇠고기 거부심리 확산으로 수입이 재개되어도 예상보다 판매가 크게 저조할 것으로 보여 미국 축산업자의 달콤한 꿈도 사실상 깨졌다. 한-미 관계도 상처를 입었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협상했을 뿐이겠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어떻게 국민 안전이 무시된 이런 졸속협상이 가능했던 것일까?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일까? 아니라고 본다. 더 깊숙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이 재난의 씨앗은 맹목적 동맹주의다. 지금 정부 안팎에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친미냐, 반미냐의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하며, 일방적이고 의존적인 대미관계를 한-미 동맹의 전형으로 생각하는 맹목적 동맹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맹목적 동맹주의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젖어 있던 대미 의존적인 심리구조에 기반하고 있다. 여기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서로 끌고 밀어주는 동반자가 아니라 보호자로만 인식된다. 미국의 정책과 방향을 좇는 것이 선이라는 생각이 무비판적으로 생활 교의처럼 되어 있다. 쌍방향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수평적 한-미 관계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면, 그것은 곧 반미로 간주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화를 내거나 밀어붙일 때, 같이 얼굴을 붉히거나 버티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맹목적 동맹주의가 시대착오적인 이유는 대한민국이 옛날의 대한민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은 미국의 보호와 지원 속에 살았지만, 지금은 필요하면 미국을 도울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1960년대 말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파병될 때, 우리 장병들에게 월급을 주고 엠(M)-16 소총 등 제반 군수품을 무상으로 공급한 것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을 도와 이라크에 파병된 한국군 부대는 월급에서 무기, 일용품에 이르는 모든 비용을 한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한다.

한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출발한 150여 신생국들 중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함께 성공시킨 거의 유일한 나라다. 그만큼 국가 역량이 성장했고,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높아졌다. 국제사회는 높아진 위상에 맞게 한국이 행동하기를 기대하며, 미국에서도 한국을 성숙한 동반자로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이번 파동을 통해 좀 까칠해 보여도 자국민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대변하는 한국 정부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 국민도 마찬가지다. 촛불 민심은 일방적이고 의존적인 동맹을 거부하고, 호혜적이고 균형적인 한-미 관계를 요구한다. 정부가 우리의 커진 몸집과 행동반경에 맞게 미국에 충고도 해 줄 수 있고, 상대방의 과도한 요구에는 단호하게 국익을 지킬 줄 아는 한-미 관계를 원한다. 그래서 ‘귀하는 누구를 위한 정부냐?’고 국민이 묻는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원한다.

정부가 맹목적 동맹주의와 국민과의 불화를 극복하는 길은 국민의 뜻을 헤아려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동맹이 싫은 것이 아니라 정부의 맹목적 동맹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촛불 민심은 한-미 관계를 맹목적으로 이념의 틀 안에 가두지 말고, 우리의 국익을 당당히 주장하면서 호혜적이며 건전한 동맹관계로 만들어 가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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