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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한국인권재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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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좋은 말인데 악용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선택’이다.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학교 선택권 확대’ 정책을 보자. 개인의 선택을 사회현상의 근원으로 보고 선택권의 확대를 삶의 질 향상이나 행복의 증진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스며 있다. 이런 풍조는 학계에서도 발견되는데 올리버 윌리엄슨 교수는 20세기 경제학은 선택의 과학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고 하는 행동과 자원과 제도, 시선에 의해 강제된 행동이 선택한 행동보다 더 많다. 또 대니얼 길버트 교수에 따르면 그 선택을 할 때조차 ‘미래에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까’에 대해 우리는 항상 잘못된 예측을 한다. 선택에 대한 강조는 많은 경우 사회적 약자의 인권적 요구를 회피하고 기득권층의 자원을 확대하려는 전략에 불과하다. 우리는 선택을 하기에 앞서 선택을 요구하는 사회환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또 선택을 하는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2007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중 국민총소득 대비 공적개발원조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노르웨이이고 가장 작은 나라는 미국이다. 한국은 미국의 절반도 안 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경제 규모 11위의 국가가 국제사회에 그 정도 기여하고도 “전혀 창피하게 여기지 않은 채 국제회의에 천연덕스럽게 나온다”며 다른 나라를 배려할 줄 모르는 한국을 비판한다. 한국은 자기 나라 국민도 배려할 줄 모른다. 국내총생산에 대한 사회적 공공지출 비율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국가가 취약계층의 삶이 기준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구실을 거의 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배려 없기는 국가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있었던 ‘16개국 경영인 협상 스타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협상 규범 중 이기주의 부문에서 한국의 경영자들이 1위를 하였다. 한국의 경영자들은 협상 상대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경우가 아닌 한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국 기업들의 배려가 현저히 부족한 것은 외부 대상에 대해서뿐 아니라 내부 직원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국가별 제조업 고용조정속도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연구 대상이 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한국의 고용조정속도가 1위이다. 경기가 후퇴하여 실제 고용량이 적정 고용량을 초과하는 경우 어느 나라보다 신속하게 해고가 이루어진다. 한국 사회가 유달리 배려가 부족한 것은 국가와 기업뿐 아니라 개인의 삶을 살펴봐도 드러난다. 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60살 이상 부모와 자녀의 대면접촉 빈도를 부모의 소득과 비교한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 국가 중 오로지 한국만이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부모와 자녀의 대면접촉 빈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가장 가까운 타인인 부모조차도 배려의 대상이기보다 이기적 목적에 종속된 도구로 취급됨을 알 수 있다. 선택을 요구하는 사회환경과 선택을 하는 자신은 이와 같이 한국에서는 ‘배려 없음’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그것을 바꾸는 데는 한 세대가 걸릴 것이다. 교육의 가장 큰 책무가 그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강남구 수서2지구에 임대주택단지 건립사업을 재고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는 선택을 한 것은 “저소득층 학생들만 몰리다 보면 교육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사회환경과 그들과 주로 접촉하는 당국자 자신이라는 선택의 맥락을 빼고는 이해될 수 없다. 여기서도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는 없다. 서울시교육청부터 바뀌어야 한다.김영환 한국인권재단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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