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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05 21:25 수정 : 2008.08.05 21:25

김선우 시인

세상읽기

부시 대통령의 방한으로 온나라가 들썩거린다. 방한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시위가 서울 도심에서 열리고, 경찰은 갑호 비상령과 함께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보며 이 글을 쓴다. 경찰은 촛불집회나 시위가 불법 폭력으로 변질되면 최루액 물대포와 색소분사기 등을 동원해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경찰의 대국민 선전포고. 이번에도 이들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잠정적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모양이다. 이들에겐 시민이거나 폭도이거나 이분법의 구도밖엔 없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들을 향해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으니’ 어쩌고 하던 경찰을 향해 광장의 시민들은 ‘저, 시민이거든요!’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경찰이 보호하겠다는 시민은 어디에 있나. 상상임신도 있으니, 이것은 상상 시민?

시끄러운 것은 무조건 진압해야 한다고? 이제 이런 관성은 좀 변해야 하지 않겠나. 세상은 인과 속에서 움직인다. 현상이 시끄럽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일이 순리다. 더는 과거의 방식으로 오늘의 시민을 윽박질러서는 곤란하다. 누가 내 나라를 찾아오든, 진심과 성의로 손님을 맞고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집에 드는 부랑아에게도 따뜻한 밥 한 끼 먹여 보내는 게 우리네 마음결이다. 그렇게 맞고 보내야 마음이 편안한 것을 알고 있는 우리네 심성이 만약 그 누군가를 오지 말라고 한다면, 왜 그런가부터 물으라.

미국이 한국을 대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를 선악의 이분구도 속으로 몰아가며 항상적인 긴장을 만들면서도 입으로는 언제나 평화와 정의의 사도인 양하는 위선과 무지도 둘째 치겠다. 전세계를 미국 자본의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발상,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전쟁도 마다 않는, 세상의 모든 것이 미국의 것이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 위험천만한 권좌의 오만방자함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요인의 하나다. 게다가 반성 없는 자본주의 소비패턴으로 지구 환경을 가장 더럽히고 있는 나라, 미국에 대해 얘기하자면 끝이 없는 난마다. 그러니 수금하러 오는 사채업자 같은 미국 대통령을 우리가 두 손 들고 환대해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나. 미국,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인식의 전환은 ‘왜?’의 회복이다. 왜 세계의 다수가 미국을 싫어하는지, 증오하는지, 상종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미국인인 것이 부끄럽다는 친구들을 나는 세계 도처에서 만났다. 길 위에서 만난 나의 미국인 친구들은 태어나 자란 고향으로서 미국을 사랑하면서도 현실정치의 미국을 부끄러워하는 딜레마를 겪고 있었다. 나도 태어나 자란 고향으로서 한국을 사랑한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따뜻한 심성의 결을 사랑한다. 하지만 현실정치의 대목으로 건너오면 한국인인 나는 자주 한국이 부끄럽다. 국내 현실뿐 아니라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한국의 자본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이 부끄러워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세계 도처를 떠돌며 자유와 평화의 삶을 갈구하던 내 떠돌이 벗들은 모두 부끄러움에 민감했다. 자신이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닌데 자기 나라의 대통령과 권력을 부끄러워하고 참회했다. 만약 향후 100년에도 미국이 유지된다면 그것은 권좌에 앉은 이들 때문이 아니라 미국인임을 부끄러워하며 참회하는 방랑자들, 성찰을 아는 떠돌이들 때문이라는 것을 미국의 대통령은 기억하시길. 그러니 우리 시민들에게서 받는 불환대를 너무 불쾌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불쾌해하기 전에, 왜일까? 부디 먼저 물으시길.

김선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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