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12 21:00
수정 : 2008.08.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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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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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인간 한계를 극복한 한 상징으로 꼽히는 헬렌 켈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내 눈을 어떻게 써야 할까?”라고 묻는다. 그러고는 “내가 가장 보고 싶은 건 어둠 속에 있는 동안 내게 소중했던 것들”이라고 답한다. 우리가 갖지 못했던 지위나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우리는 꼭 하고 싶었던 어떤 가치나 소망을 이루려 희구한다. 헬렌 켈러의 말을 빌리면 ‘가장 소중한 어떤 것들’일 게다. 그러나 무엇이 소중한지를 판별하지 못하면 빛의 시기 동안 우리는 엉뚱한 것을 이루려 헤매게 된다. 때론 탐욕, 오판, 준비 부족으로 소중한 그 시기를 망치기도 한다. 하여 헬렌 켈러의 깊은 묵상은 유한한 우리네 삶 전체에 걸친 잠언으로 다가온다. 각고로 성찰하지 않을진대 소망스런 가치는 결코 쉬이 설정되지도 성취되지도 않는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강력한 정치담론을 통해 공동체의 운영 권한을 부여받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 행태는 ‘누구의’ ‘무엇을’ 잃어버린 것으로 여겨 왔는지 차분히 묻게 한다. ‘되찾은 5년’은 어떤 가치를 이루고 물러나려는가? 민주 선거를 통해 ‘정부’ ‘정권’의 운영 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았음에도 마치 ‘국가’와 ‘사회’의 전면개조 권한을 부여받은 듯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기임에도 벌써 전체 흐름은 읽게 해준다. 부패 구조의 부활, 언론자유와 정부 비판 제약, 사회 영역별 분화·분리·자율·개방의 부인, 인터넷과 집회를 포함한 밑으로부터의 참여 통제, 대통령·청와대의 의회주의·대의정치 경시, 검찰·감사원·경찰·방통위 등 일련의 비대의(非代議) 관료기구의 역할 급증과 권위주의 행태 부활, 공공성의 현저한 후퇴와 사적 가치·이익·경쟁 논리의 국정가치화, 온건 대북정책 중단 및 기존 합의 이행 거부, 한-미·동아시아·남북 3중 관계의 동시 난맥화와 한국의 역할 감퇴 …. 요체는 청렴·개방·분화·참여·자율·소통·대의·비판·공공·화해·자존의 잃음으로 나타난다.
일부 급진 친북·좌파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이상은 오류이며 실현 가능성도 없다. 만약 그 일부를 솎아내고자, 또 국정 실패를 오도하고자 민주·진보·개혁·화해·자존 지향과 세력을 전부 좌파로 규정하여 이념 공격에 집중한다면, 외려 좌파를 확대하는 자기모순이자 너무 큰 국력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의회주의를 추구하는 시민담론과 세력, 최저 생존과 생활 보장을 요구하는 생존·민중·복지담론, 남북 화해를 추구하는 화해·평화 담론을 모두 좌파로 몰아 억압해선 안 된다. 외려 이들을 포용해 급진 친북·좌파와 분리하고 정부 지지기반을 넓힐 필요가 있다. 대미 자존 담론은 또 어떠한가? 그것이 과연 반미 좌파인가? 이승만과 함께 초기 한-미 동맹을 구축한 전 총리·외무장관 변영태는 “반미 없이 친미 없다”고 단언한다. 즉 진정한 친미(선린우호)를 위한 깐깐한 반미(자존)가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좋다고 통찰한다. 안중근·신채호·여운형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특수한 지정학으로 인한 자존과 협력, 민족과 국제의 예리한 결합 전략을 말한다.
이 소중한 5년을 ‘잃어버린 10년’의 허구 담론을 위해 허비할 것인가? 공동체의 통합·활력·연대·발전·소통·자율·화해·자존·국제협력의 창출보다 위의 허구가 정녕 더 소중한가? 만약 경제파탄으로 인한 생존·생활 담론 강화에다 시민·민중·남북 화해·자존 담론이 모두 연대할 경우 그땐 정부 담론 자체가 해체될지 모른다. 권력을 위임받은 분들이 이 5년을 허구의 자기 이익과 특정 이념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자유·자율·통합·화해·자존·협력의 보편 가치를 향한 더없이 소중한 빛의 사흘로 여기길 소망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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