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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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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춘원 이광수는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민족주의와 근대화 논리의 처음과 끝을 동시에 보여준다. 춘원에 대한 평가로부터 8·15를 광복절로 볼 것인지 ‘건국절’로 읽을 것인지도 갈라진다. 8·15를 일제로부터 한민족이 ‘빛을 되찾은 날’(광복절)로 본다면 그는 반역자 굴레를 벗기 힘들다. 건국절로 읽으면 그는 ‘조국 근대화’를 위해 민족성의 개량과 계몽, 그리고 교육을 위해 몸 바친 인물이 된다. 이광수의 평생은 ‘위하여’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일찍이 1925년, 그는 “평생을 일신의 안락 말고 정의를 위해, 동포를 위해 바치기”로 맹세한다.(세 가지 맹세) 또 창씨개명을 하고 적극적으로 일제에 부역하던 1940년, 그 제자의 평가도 비슷하다. “선생님의 하시는 일은 남을 위하여, 그야말로 중생을 위하여 도와주는 일뿐이 아닌가 합니다.”(<춘원시가집> 서문)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자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그는 토로한다. “나는 ‘민족을 위하여 살고 민족을 위하다가 죽은 이광수’가 되기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내 노래) 죽을 때까지 민족을 위하여 살았다던 사람이 도리어 민족을 배신한 결과를 빚은 아이러니, 이것이 우리 근대사의 비극이다. 한데 이광수의 참된 비극은 그토록 믿고 흔들림이 없었던 ‘위하여’라는 말 속에 뿌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남을 위한다, 민족을 위한다는 의사는 선의에서 나온 것으로서 칭찬 받을 만한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위하여’가 갖는 문제는 일방적이라는 데 있다. 상대방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위하여’는 폭력에 진배없다. 지하철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면서 도리어 피곤한 승객들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이도 남을 위하여 그러고 있는 것이다. 나치 정권의 홀로코스트도 독일 민족을 위하여 유태인의 씨를 말리려 한 것이었다. 중학생인 아들이 싫어하는 말 중에는 “공부하라는 건 너의 장래를 위해서야”라는 말도 들어 있다. 중학생조차 ‘위하여’를 싫어하는 까닭은 위함을 받을 ‘나의 동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천년 전 맹자 또한 “한 움큼의 밥을 먹지 못하면 죽을 지경이라도 발로 툭 차며 주는 밥은 거지조차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선의, ‘위하여’ 논리는 도리어 상대로 하여금 모욕을 느끼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위하여’의 또 다른 문제는 이것이 자칫 권력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위하는 자는 선지자나 선각자 곧 스승이 되고, 위함을 받는 자는 계몽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한 연구자의 지적은 절묘하다. “이광수에게 지식을 중개로 한,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의 계급성은 부정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었다.”(하타노 세쓰코) 그렇다면 이광수가 평생을 두고 간직한 것은 ‘위하여’ 논리 속에 감춰진 가르치려는 욕망이 아니었을까? 맹자가 일찌감치 전국시대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남을 가르치려고 드는 욕망”의 덫, 곧 권력성에 내내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위하여’ 속에는 무엇이든 집어넣을 수 있다. 독재도, 전쟁도, 죽임도 국민을 위하는 정치일 수 있듯이. 요컨대 ‘위하여’의 치명적 문제는 너는 없고 ‘나’만 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광수의 비극은 홀로 남을 위하였을 뿐, ‘함께·더불어’로 나아가지 못한 데 있다. 신영복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남을 위해 우산을 씌워주기보다는, 비를 함께 맞는 사람이 되기”, 이것이 이광수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라고 할 수 있을 테다.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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