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23 19:49
수정 : 2008.09.2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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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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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최근 우리 사회의 한 중심 화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였다. 이는 우리의 삶에 북한 문제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상징한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건국 60년’ 오늘에도 여전히 중대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건강을 둘러싼 정보공개와 보도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와 언론의 판단·행태·대처는 너무 미숙하여 정보관리, 국익, 향후 사태 주도 측면에서 큰 우려를 자아낸다. 일련의 실수들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과 타국에 유리한 행위들이었다. 먼저, 정보기관·국회의원·언론은 정보능력을 과시하려는 의욕에 압도되어 상대의 가장 은밀하고 중요한,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기밀(첩보) 사항을 잇따라 공개하여 정보 입수경로, 정확성 여부, 분석능력을 스스로 폭로하였다. 기밀첩보의 사전 상세 공개는, 맞으면 정보채널의 붕괴를 가져오고, 틀리면 정보능력을 상대와 세계에 고스란히 알려주기에 항상 자해적이다.
국가 안보와 사태 주도를 위해 존재하는 ‘사전 대비계획’의 공개는 더욱 심각하다. 남북관계와 통일·평화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국가기밀과 군사보안에 해당하는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준비들이 여러 ‘계획’ ‘작전’ ‘전시 대비’ ‘모의연습’ ‘한-미 합동대책’이란 이름으로 단계별 조치까지 공개되어 북한은 앉아서 남한(과 미국)의 대처 방향·의도·준비를 합법적으로 입수해 사태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너희가 흔들리면 우리는 이렇게 대처·공격할 것”이라고 미리 알려줄 때 그런 상대에게 호의를 갖거나, 대비하지 않을 바보는 없다. 김정일과 김정일 이후의 북한 리더십은 ‘공개된 이 비밀’로부터 무엇을 배울까? 반북의지가 초래한 의도하지 않은 북한돕기로서 과연 무엇이 친북 활동인지, 누가 국가보안법 위반인지 묻게 된다. 또 이렇듯 노출된 대책들은 실제 상황이 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막대한 노력과 예산을 투입한 계획의 사용 불능 상태를 자초한 것이다.
이 역설적 국익저해는 정부와 일부 언론이 국가와 사회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몇몇 역사적 비교적 사례는 우리에게 매우 시사적이다. 1950년 가을 김일성을 포함한 최고지휘부가 극비리에 후퇴하였음에도 미국 공군은 11월6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고산진 비밀현장을 맹폭하였다. 같은 일이 반복되자 북한 지휘부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상 요소들을 척결하였다. 분단, 만주 공산화, 북한 정부와 군대 창설 과정에서 침투한 고위급들은 이때 완전히 붕괴하였다. 둘째, 북한 내부문건을 보건대 1994년 김일성의 사망 직후 난무한 북한 붕괴설과 급변사태 대책들이 “이러다 우린 다 죽는다”는 집합심리를 자극해 선군주의 등장의 한 명분이 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해결과정에서 정보기관의 역할 노출에 대한 거센 비판을 기억해야 한다. 넷째, 통일과 반동독, 급변사태 대처를 운위하지 않은 서독은 실제 급변사태를 맞자 신속히 통일을 완성하였다. 반면 통일과 반북을 강조하고 약간의 상황변동에도 급변사태 대책을 요란스레 외쳐 온 우리는, 통일은커녕 북한 관리도 잘못하고 있다. 다섯째, 김정일의 건강정보 공개나 향후 대처 두루 미국·중국·일본이 왜 우리보다 훨씬 더 신중하였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북한을 둘러싼 위기설, 이상설이 외려 북한을 도와주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사려해야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공화주의자들은 애국심과 애국능력을 검증하려면 국가 안위 문제를 맡기거나 국경을 넘어 협상을 시켜보라고 하였다. 지금처럼 사리분별력을 갖지 못한다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은 북한 사태에 앞서 우리 자신의 북한 관리-한반도 관리 능력일지 모른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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